▲ 14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방이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모텔촌을 가로질러 등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낯 뜨거운 등·하굣길… 주변 유해업소 ‘성행’
“외국인 관광객 유치? 학습권만 오히려 파괴”
쾌적한 환경 조성 위해 ‘법개정’ 신중히 검토해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4일 오전 7시 30분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방이중학교 앞. 등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은 학교에 도착하고 있었다. 쾌적한 환경의 등굣길이어야 하지만 눈앞에는 모텔과 유흥업소가 즐비해 있었다.

학교의 절반이 모텔에 둘러싸여 있어 몽촌토성역(8호선) 방향에서 오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모텔촌을 지나야만 했다. 학생들은 모텔에서 나오는 차량은 물론 선정적인 광고판을 보며 거리를 걸어야 했다.

길거리에는 ‘장소 선택 후 연락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속옷만 입은 여성이 찍힌 전단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져 있었다. 또 모텔촌 사이에 있는 성인나이트클럽을 소개하는 전단지도 쉽게 눈에 띄었다.

등교를 하던 A군(15)은 “바닥에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몰래 주워서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홍성민(14) 군은 “이렇게 모텔이 많은 것은 중학교에 와서 처음 본다”고 말했다. 홍 군은 “학기 초에 학교에서 ‘안전한 등굣길’에 대한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줬지만, 한참을 돌아와야 하는 길이라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며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텔촌을 지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매일 모텔과 유흥업소를 봐서 학교 주변 환경에 익숙해졌다는 학생도 있었다.

B양(15)은 “지난해에는 학교 주변에 모텔과 유흥업소가 있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1년 동안 매일 보다 보니 지금은 태연하게 모텔 옆을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이중학교를 졸업한 자녀를 둔 손병관(53, 남) 씨는 “모텔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다 봐왔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말하면서 모텔이 하나씩 들어섰고, 주위에는 엄청난 숫자의 유흥업소가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침이 되면 주차된 자동차는 유흥업소 홍보용 전단지로 꽃단장을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이중학교는 대표적인 ‘호텔 난개발 지역’이다. 88올림픽 당시 외국인 관광객 숙박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훈령으로 숙박업소 설립이 허용됐고, 현재 유흥주점·모텔 등 90여 개의 업소가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경제성장이 학교 주위를 황폐화한 셈이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정화구역 있으나 마나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풍생중학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학교는 큰 도로를 끼고 10여 개의 모텔촌이 마주하고 있었다.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은 매일 모텔 건물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텔 뒤편 모란시장 골목 역시 상황은 심각했다. 골목에는 단란주점, 성인노래방 등 유흥업소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김여진(43, 여) 씨는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인데 유흥업소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난감하다”라며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까봐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교육지원청의 입장이다. 학교 주변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으로 정해져 있지만, 제한 요건이 엄격하지 않아 대부분의 업소는 모두 설립허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정문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m지점(절대정화구역)까지는 음주·가무가 허용되는 유흥업소, 호텔·여관·여인숙 등 숙박시설, 당구장·PC방 등이 제한된다. 학교 정문으로부터 반경 200m지점(상대정화구역)은 심의만 거치면 이 같은 업소가 들어서는데 문제가 없다.

특히 업소가 들어서려는 지점이 거주지역이 아닌 상업지역으로 분류돼 있으면 학교와 근접해 있어도 현행법으로 제한할 근거가 없는 상태다.

▲ 14일 오후 8시 경기도 성남시 풍생중학교 앞. 10여 개의 모텔들이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모텔 앞을 지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해 불법 유해업소 급증

이 같은 법망을 이용해 최근 1년간 학교 주변에 불법 유해 업소가 급증하기도 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날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각종업소 및 불법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심의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거나 학교 주변에 영업 자체가 금지된 유해업소를 불법으로 운영하다가 적발된 건수가 334건에 달했다.

종류별로는 유흥·단란주점(3→9건), 키스방·휴게텔 등의 신변종업소(46→184건)가 급증했다.

이에 대해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쾌적한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당연한 건데,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을 이유로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모텔에 둘러 싸여 있는 학교’가 굉장히 많다”며 “정부는 학습권이 보장받지 않는 현재의 모습을 예시로 삼아 학교 옆에 호텔을 지을 수 있는 ‘관광진흥법 개정’에 신중히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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