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2호가 말레이반도 해상에서 실종된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잔해로 보이는 물체를 촬영했다고 4일 밝혔다. 남반구의 빨간색 네모 안에 있는 빨간색 점이 잔해 추정 물체가 발견된 곳 (사진출처: 연합뉴스)

블랙박스 작동 종료 '초읽기'…장기간 해저수색 이어질 듯
말레이 정부 '정보 늑장 공개·말 바꾸기' 불신 자초

(자카르타=연합뉴스) 말레이시아항공 실종 여객기 수색이 6일로 30일째를 맞았지만 사고 원인과 기체 행방을 밝힐 뚜렷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실종기 블랙박스 신호 발신기의 작동 종료 시점까지 다가와 사고 원인 규멍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보잉 777-200(MH 370) 여객기는 지난달 8일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중국 베이징으로 가던 중 남중국해 상공에서 통신이 끊기고 레이더에서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달 15일 여객기가 '고의로 통신장치를 끄고' 항로를 틀어 말레이반도를 가로지른 뒤 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고 밝혔으며 24일에는 실종기가 인도양 남부에서 비행을 마쳤다며 추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호주 정부 중심의 국제수색팀이 남인도양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업을 3주째 벌이고 있으나 항공기 잔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기존 10일이었던 민간 항공기 최장 실종기록도 연일 경신되고 있다.

블랙박스 신호 발신기 전지의 수명이 끝나는 사고 후 30일째가 되면서 블랙박스 회수 가능성도 줄어들어 사고 원인 규명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랙박스 신호가 사라지면 무인 잠수정이나 해저의 지형과 물체를 포착할 수 있는 음파탐지장치를 갖춘 선박으로 바다 밑바닥에서 항공기 잔해를 찾아야 하지만 수색 범위가 너무 넓어 성공 여부나 소요 기간을 점치기 어렵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고 후 추락지점을 추정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뒤늦게 공개해 수색에 혼선을 빚게 하고 통신기기 작동 중단 시점을 번복해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는 등 미숙한 대응으로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 남인도양서 사상 최대 규모 수색…기체 행방 '묘연' = 서호주 서쪽 1천800㎞ 남인도양에서는 호주와 미국, 중국, 한국, 일본, 영국, 뉴질랜드 등 7개국이 파견한 항공기 10대 이상과 선박 10척 이상이 매일 수색을 하고 있다.

이는 항공기 사고 역사상 최대 규모로 꼽힌다. 수색에 투입된 비용도 지금까지 비용이 가장 많이 든 것으로 알려진 2009년 에어프랑스 여객기 대서양 추락 사고의 5천400만 달러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수색이 3주째 계속됐으나 항공기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호주해상안전청(AMSA)이 지난달 28일 실종기의 레이더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수색 영역을 퍼스 서쪽 1천800㎞ 해상으로 옮긴 뒤 부유물체가 다수 발견되고 수색 선박에 인양됐으나 모두 그물 등 버려진 어구 등으로 확인됐다.

국제 수색팀은 블랙박스 신호 발신기 작동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지난 4일부터 미 해군의 첨단 블랙박스 탐지장비 '토드 핑거 로케이터'(TPL)와 음파탐지장치를 갖춘 영국 해군 함정 에코호를 투입해 블랙박스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TPL이나 음파탐지장치가 블랙박스 신호 발신기의 초음파를 포착하려면 시속 5㎞ 안팎의 느린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추락 지점 범위가 좁혀지기 전에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5일 오후 중국 해양 순시선 하이쉰 01호가 블랙박스 발신기가 내는 신호와 같은 주파수 37.5㎑의 신호를 탐지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으나 이 신호가 실종기 블랙박스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색 전문가들은 늦어도 12일께 신호 발신기가 완전히 멈추면 블랙박스를 찾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다면서 무인 잠수정 등으로 바다 밑바닥을 수색하는 어려운 과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산업전문지 에어라인레이팅스닷컴의 조프리 토머스 편집장은 "블랙박스 신호가 멈추면 인도양 밑바닥을 수색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수색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사고 원인 수사 혼선, 미궁에 빠질 가능성 = 사고 원인 수사도 여러 차례 혼선을 겪으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직후 유럽인의 도난 여권을 가지고 탑승한 사람이 2명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들이 유럽 망명을 노린 이란인들로 밝혀지면서 테러 가능성은 배제된 분위기다.

이어 말레이시아 정부가 '고의적인 통신장비 훼손'과 항로 변경 사실을 공개하면서 조종사 또는 승객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제기돼 이들의 개인적 배경 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범행 관련 단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사고기 기장인 자하리 아흐마드 샤(53)의 집에서 데이터가 삭제된 모의비행장치가 발견되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를 분석하면서 그에게 의혹이 집중됐지만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모든 승객과 승무원에 대한 조사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독극물 중독 가능성을 고려해 음식과 화물까지 조사하고 있다. 사고 원인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 정부 '정보 늑장공개·말 바꾸기'로 불신 자초 =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고 발생 후 항로 정보를 늦게 공개하고 통신기기 작동 중단 시점 발표를 번복해 수색과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영국 인공위성업체 인마샛(Inmarsat)이 여객기가 실종된 후 수시간 동안 더 비행했고 항로를 서쪽으로 틀었다는 정보를 사흘 만에 제공했으나 말레이시아 정부가 나흘 뒤에야 이를 공개, 국제 수색팀이 남중국해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가 통신시스템 작동 중단 시점과 조종실과 지상관제소 간 교신 내용을 번복한 것은 사고 수사에 혼선을 초래한 대표적인 경우다.

나집 라작 총리는 애초 운항정보 교신시스템(ACARS) 작동이 지상관제소와의 마지막 교신 전에 고의로 중단됐다며 이를 조종사가 사고에 직접 관여한 정황으로 꼽았으나 이후 ACARS의 작동 중단 시점을 알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또 처음에는 조종사가 쿠알라룸푸르 관제소에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다 괜찮다, 좋은 밤'(All right, good night)이며 교신자는 파리크 압둘 하미드(27) 부기장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가 교신 내용은 '좋은 밤 말레이시안 370'(Good night Malaysian three seven zero)이며 교신자도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번복했다.

이 같은 대응이 계속되면서 야당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66) 전 부총리가 군의 첨단 레이더가 항로로 바꿔 말레이반도를 통과한 여객기를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면서 정부의 정보 은폐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또 "국가로서 말레이시아의 진실성이 위기에 처했다"며 국제 위원회를 구성해 실종기 수색과 사고원인 수사를 맡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샤무딘 후세인 교통장관 대행은 5일 기자회견에서 수색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 미국, 영국, 프랑스가 참여하는 다국적 조사팀을 구성해 기체 부분, 운항 부분, 인적요소 부분 등으로 나눠 사고원인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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