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감독인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세계 언론은 흑인 감독 최초의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며 흥분했다. 해마다 습관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소식을 접하면서도 왜 흑인 감독 작품상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져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 소식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미국에선 이미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각 분야에서 흑인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종 간의 차별과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이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다. 미국이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백인들이 틀어쥐고 있다.

인종차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 예술이나 스포츠 무대에서 흑인을 찾아보기 힘든 분야가 더러 있다. 발레 공연에서 흑인 무용수를 보기 힘들고 스포츠 중에서도 겨울 스포츠 종목에 참가하는 흑인 선수들이 많지 않다.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흑인 선수들이 드물었다.

종목에 따라 인종이 나눠지는 것도 흥미롭다. 세계 육상계를 주름잡는 것은 우사인 볼트를 비롯한 흑인들이고 미국 프로스포츠에서도 농구나 풋볼 등에서도 흑인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반면 수영이나 테니스 등에서는 백인들이 대세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우사인 볼트 등 단거리 선수는 물론 마라톤과 중장거리에서도 흑인들이 메달을 휩쓸다시피 했다. 여자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선수들의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 2013년 충주에서 개최된 세계조정선수권대회에선 흑인 선수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거의가 백인 선수들이었다.

미국 프로농구나 풋볼에서 흑인선수들이 훨훨 날아다니지만 감독은 거의 백인들이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구단주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흑인이 감독으로 나선 일은 거의 없다. 유럽 프로축구에서도 수많은 흑인 스타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흑인 감독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흑인은 물론 황인종도 거의 없다. 법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것이다.

미국 문화의 양대 축은 음악과 영화다.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백인 중심 사회에서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영감과 음악적 재능으로 미국 음악의 뿌리를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수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미국 대중음악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국 대중음악의 주역은 흑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그러나 자본을 쥐고 있는 백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금융과 언론을 장악한 유태인들이 영화 산업까지 쥐락펴락하였고 배우를 비롯한 영화 산업 종사자들도 백인 중심이었다.

미국 영화에 영웅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거의 백인이다. 슈퍼맨, 배트맨 등 수많은 영웅들이 백인이다.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영웅들이 물리쳐야 할 악당에나 어울리는 존재였고 지금도 그 공식은 크게 엇나가지 않는다. 달콤한 로맨스의 주인공 역시 백인들 차지다. ‘사랑과 영혼’에서 여인을 뒤에서 껴안고 도자기를 함께 빚는다거나, ‘맘마미아’에서 사랑경쟁을 하는 미남들 모두 백인들이다. 만약 이들이 흑인이라고 하면, 모두들 정말 이상하다고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들 백인들에게 세뇌당해 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흑인 감독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고 하니 세상이 진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차별 없이 인정받고 존중 받는 세상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 곁에도 ‘노예’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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