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의 귀환’.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5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올림픽파크 메달프라자에서 열린 메달 세리머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새로운 조국에 金포함 2개 메달 안겨
빙상계의 파벌싸움, 귀화 배경이 돼
최초로 올림픽 전 종목 시상대에 올라
전무후무한 족적 초읽기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안현수(29, 빅토르 안)가 러시아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안현수는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올림픽 4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대회에서 3관왕(금3, 동1)을 한 바 있다.

동료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와 연합작전을 펼쳐 함께 1, 2위로 나란히 결승점을 통과한 안현수는 코치진과 얼싸안고 기뻐했고, 안현수는 한가운데로 나와 빙판 위에 키스를 하며 기쁨을 표했다. 본인도 이순간만을 기다려왔을 것이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의 묘한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안현수가 조국 대한민국을 뒤로 하고 러시아로 귀화를 결정하는 순간 이미 예견된 현실이었다. 빅토르 안이 되기 전 안현수는 올림픽 3관왕과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 5연패(2003~2007년)를 달성할 정도로 말이 필요 없는 부동의 한국에이스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쇼트트랙 황제였다. 특히 토리노대회에서는 쇼트트랙 역사상 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오른 유일한 선수다.

탄탄대로를 걷던 안현수의 발목을 잡은 건 한국 빙상계의 고질병인 파벌싸움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안현수의 부친 안기원 씨가 2006년 4월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선수단의 귀국 환영식장에서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그간 소문으로만 들리던 한체대와 비한체대 출신 코치들 간 파벌 싸움이 세간에 드러났다.

부친 안 씨는 2010년에도 밴쿠버 금메달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출전을 포기한 것과 관련해 코치진의 강요로 출전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해 또 한 번의 파문이 일어난다. 이에 문체부에서 감사에 들어간 결과, 짬짜미(담합) 정황이 확인돼 이정수와 곽윤기가 잠시 선수생활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안현수가 피해를 본 건 파벌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이었다. 2008년 무릎부상을 당하며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해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고, 여기에 소속팀 성남시청까지 해체되면서 갈 곳을 잃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소속팀 없이 홀로 훈련해서 201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으나 아쉽게 5위를 하며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런 안현수를 아무도 돌보지 않았고, 홀대하는 사이 러시아에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러시아연맹은 1억 원이 넘는 연봉과 생활비 지원 등 전폭적인 후원을 약속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이미 파벌로 얼룩진 빙상계의 현실에 몸과 마음이 지쳤던 안현수로선 재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자신의 진가를 알고 그에 걸 맞는 좋은 조건으로 대우를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안현수는 러시아행을 택했고,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급기야 국적을 바꿀 수밖에 없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당시만 해도 안현수의 기량이 예전 같지 않고, 국내에는 좋은 인재가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귀화하는 안현수를 빙상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일부에서는 안현수가 러시아대표팀으로 뛰게 되면 소치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메달사냥을 가로막을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 그대로 돼버렸고, 한국남자쇼트트랙은 12년 만에 노메달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을 만나고 말았다. 쇼트트랙 황제가 예전의 기량을 되찾고 다시 황제로 귀환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의 황제가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안현수는 이미 1000m와 1500m에서 모두 시상대에 올랐고, 나머지 500m와 계주결승에서도 메달을 획득한다면 또 한 번 모든 종목에서 시상대에 서는 유일한 선수가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현수가 아닌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과연 안현수가 빅토르 안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황제의 위용을 떨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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