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시엠 립은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유명하다. 앙코르와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영화 ‘툼 레이더’로 더욱 유명해졌다. 시엠 립 시내 ‘올드 마켓’에 있는 카페 ‘더 레드 피아노’는 안젤리나 졸리가 들른 적이 있다 해서 지금도 인기가 높다.

이곳에도 한류 열풍이 불어 거리에서 한국 음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지난해 31일에는 ‘강남 스타일’에 맞춰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한데 어울려 뜨거운 밤을 보냈다. 라이브 음악 카페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생으로 한국 노래를 불러 주기도 한다.

비행시간이 5시간 남짓으로 그리 멀지 않고 요즘은 건기라 비가 내리지 않고 전에 볼 수 없는 선선한 날씨가 이어져 관광하기에 그만이다. 그 때문에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시엠 립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맘때가 관광 피크다. 예전에는 아시아인 중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았지만 요즘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많다.

시엠 립에서 단체 한국 관광객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이 ‘평양 랭면’이다. 북한이 운영하는 곳으로 북한식 음식을 먹으면서 북한 미인들이 펼치는 공연을 볼 수가 있어 인기가 높다. 점심시간이면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평양 랭면’ 앞에 장사진을 친다.

‘평양 랭면’에 들른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음식 값이 싸지 않지만 그 때문에 타박을 하는 손님들은 거의 없다. ‘평양 랭면’에 주는 돈이 결국 김정은 정권에 가는 거 아니냐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의치 않는다. 현지 가이드들도 관광객들을 많이 보낼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한국 관광객들이 ‘평양 랭면’과 현지 여행사들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남북한 관계가 좋을 때면 별 문제 없지만 분위기가 험해지면 ‘평양 랭면’의 풍경도 달라진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사건 때는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 교민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안기부에서 ‘평양 랭면’을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평양 랭면’에 꼭 가야 할 사정이 있으면 뒷문을 이용했다고도 한다.

‘평양 랭면’에도 스타가 있다. 춤과 노래 실력을 갖춰 ‘시엠 립의 이효리’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미인이 있다.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어느 한국 청년은 오직 그녀를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몇 번씩이나 시엠 립 행 비행기를 탔다.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가, “당대에는 그런 일 없습니다”라는 야박한 소리를 듣고서도 허허 웃기만 했다.

‘평양 랭면’ 사람들과 관광 가이드들은 친하게 잘 지낸다. 동업자 처지이기도 하지만 같은 민족이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정이 더 간다고 한다. 가이드들은 ‘평양 랭면’ 식구들이 순박한 맛이 있어 좋다고 한다. 장사를 하지만 닳은 구석이 덜하다는 것이다. ‘평양 랭면’ 식구들은 철저한 통제 속에서 생활한다.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도 없고 고향 방문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다.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면서 서빙 일도 열심히 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을 한창 나이인지라 엄격한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님들을 보면 방긋 웃는다.

‘평양 랭면’은 일종의 평화지대다. 정치상황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남북한 사람들이 격의 없이 만나고 어울리는 평화의 공간이다. 올해도 ‘평양 랭면’처럼, 탈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다. 좋은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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