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기획]生老病死 그 답을 찾기 위해 부귀영화 버린 ‘붓다’
[종교기획]生老病死 그 답을 찾기 위해 부귀영화 버린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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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참 의미 되살려 사회에 희망을

붓다의 출생과 불교의 탄생

불교는 기원전 6세기경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 BC 563~483년)에 의해 창시됐으며, 히말라야 산맥 밑자락, 지금의 네팔과 인도 북부지방 마가다 왕국을 중심으로 발흥했다.

붓다의 출생지는 룸비니였고, 성장지는 카필라성(Kapilavastu)이다. 부친은 사키아족 출신인 카필라 성주 슈도다나 왕이며, 모친은 왕비 마야 부인이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라 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은 후 고타마 붓다라 불렀다. 또 사키아족의 성자라는 데서 석가모니 혹은 석존이라고도 불렀다.    

▲ ⓒ뉴스천지
어머니 마야 부인은 싯다르타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슈도다나 왕은 어린 싯다르타가 앞으로 위대한 왕이 되기를 바라며 일찍 학문을 가르치고 지극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싯다르타는 화려한 궁궐에서 생활했지만 거기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29세가 되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궁궐 밖 세상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의 승낙을 받고 궁궐을 나섰다. 

싯다르타가 마차를 타고 궁궐을 나가 밖에서 처음 본 광경은 늙은 노인이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로 나가서는 병든 사람. 다음은 죽은 시체, 그 다음에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답을 찾고자 길을 떠난 어느 탁발승을 보게 된다.

4가지 장면을 목격한 싯다르타는 인생의 중대사인 생노병사에 대해 큰 의문을 품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결국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出家)를 결심한다. 그는 29세에 부인인 야수다라와 아들 라후라를 버리고 출가해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이라는 수행의 길을 택한다.

그는 알라라 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에게 사사받다가 만족치 못하여 스승을 떠나 5명의 수행자와 함께 다시 고행의 길을 떠났다. 6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Buddhagaya)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이 깨달음의 내용이 4체(四諦)·12연기(緣起)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8정도(八正道)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법(法 Dharma)이라 하고 이 법을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로 설법(說法) 한 후 그들을 제자로 삼는다. 이로써 불교는 비로소 하나의 종교로서 교조(敎祖)·교리(敎理)·교단(敎團)을 갖추고 전파되기 시작했다. 45년간 교화(敎化) 활동에 힘쓴 붓다는 80세가 되어 입멸해 열반(涅槃)에 들고 종단은 제자 마하가섭 등이 중심이 돼 붓다의 율(律)과 법(法)을 유지하게 된다.

이후 붓다의 교법(敎法)은 정리되고, 여러 도시와 일반 서민들에게 전파되어 갔다. BC 317년경 찬드라 굽타(Chandra Gupta)에 의해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되고 이 왕조 제3대 왕 아쇼카가 즉위한 후 불교는 비약적인 팽창을 하게 된다.

불교 교파 분열과 성장

불교의 급속한 팽창은 일면 교단 자체의 질서면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결국 교파분열을 초래했다. 붓다 사후 100년경 계율 해석을 놓고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고 두 개의 부파(部派)로 나눠진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라 하였고, 후자를 대중부(大衆部)라 한다. 분열은 붓다의 교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가 주원인이 됐다. 크게 둘로 갈라진 부파는 계속 분열돼 각각 18∼20개 정도의 부파를 형성한다.

부파 발생의 발단은 계율 해석의 학설상 차이에 있었지만, 학설보다는 지도적 장로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달랐거나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부파를 형성하는 일도 생겼다.

이 시기를 부파불교 시대라고 지칭하는데 이와 같은 불교의 부파적 전개는 외적 확대와는 달리 붓다 당시와 같은 순수성을 잃고 율(律)·경(經)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注釋學)에 빠졌다. 곧 아비달마 불교의 발달을 보게 되었으니 불교는 승원(僧院) 중심, 출가(出家) 중심의 학문불교로 변화하고, 따라서 대중성을 잃어버린다.

이에 불교계 일부에서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러한 운동은 진보적 입장을 대표하던 대중부 및 재가(在家) 불교도가 중심이 된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고 한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간다라를 거쳐 티베트,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타클라마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이들 지역은 중국에서 서역이라 불리던 곳으로 대월씨(大月氏)·안식(安息)·강거(康居) 등의 이 지역 승려들에 의해 불경과 불상이 전래되고 경전이 한역되었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중국 전래의 도교 사상과 많은 융합이 일어났다.

대한민국과 일본에 전래된 불교는 중국의 한역 불경이 근간을 이루었으나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 역시 지속적으로 전파되었다. 티베트에 전래된 불교는 독자적인 발전을 거쳐 라마교라 불리게 되었으며 몽고에 전파되었고 원나라 시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원나라 멸망 후 중국과 한국 등에서는 쇠퇴하였으나 이후 청나라 시기에 황궁의 종교가 되기도 하였다. 서쪽으로 전파된 불교는 유럽에까지 전파되어 칼미크 공화국은 불교를 국교로 삼기도 한다. 북방 경로를 거쳐 전파된 불교는 대승불교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불교가 전파되었으며 스리랑카, 타이, 캄보디아, 버마, 베트남 지역의 대다수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산스크리트어의 방언인 팔리어로 된 불경이 전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방 경로를 통해 전해진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상좌부불교라고 부른다. 또한 남방불교 또는 테라바다(Theravada) 불교라고도 부른다.  

▲ 국보 24호 석굴암 불상.

한국불교 전래와 발전

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6월 전진의 왕 부견이 순도스님을 통해 불상과 경전을 받으면서 부터다. 고구려에서는 이때 성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했으며 다시 2년 뒤에 아도스님이 오자 이불난사를 지어 머물게 했다.

백제에는 침류왕 원년(384년)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배를 타고 건너왔다. 신라의 경우는 고유신앙의 반발 등 약간의 난관을 거쳤으나 법흥왕 14년(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왕실을 중심한 귀족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고구려·백제·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뒤 한국의 고대 불교는 찬란한 황금기를 구가한다. 전국 곳곳에 사찰이 세워지고 국왕으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불교를 신앙했다.

특히 신라와 고려시대에서는 ‘이 땅이 곧 불국토’이기 때문에 호국이 호법이라는 불연국토사상이 깊게 뿌리내림으로써 불교는 국가의 보호아래 화려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일대를 통해 왕실의 보호에 힘입어 발전하던 불교는 조선왕조의 출현과 함께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불교는 조선시대 3대 태종의 즉위와 함께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태종은 11종파를 조계·천태·화엄·자은·중신·총남·시흥 7종으로 통폐합하고 각 종파의 소속사찰을 극히 제한했다. 사찰소유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고 도첩제도를 엄격히 시행해 일반사람들이 승려가 되는 길을 봉쇄했다.

또 고려 이래의 제도이던 왕사·국사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승려의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켰다. 이 같은 척불정책은 세종 때에도 계속돼 조계·천태·총남종을 묶어 선종으로, 화엄·자은·중신·시흥종을 묶어 교종으로 다시 축소 조정했다.

척불정책은 조선후기까지 유지된다. 조선후기의 불교 상황은 승려의 사회적 신분저하로 도성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었다.

1895년 모든 척불정책이 중단되지만, 1910년 한국은 일본에 치욕적인 합병을 당한다. 한일합병 후 일본은 한국불교를 통제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해 31본산제를 운영하고 한국불교를 왜색화하기 위해 승려의 대처화를 추진해 전통교단의 순수성을 파괴한다.

이에 불교계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불교의 왜색화에 대항해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3.1운동 때 불교계는 한용운과 백용성을 민족대표로 참여시켰으며 많은 고승들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해방이후 한국불교는 또 다시 시련을 맞는다. 국토의 분단으로 이북지역에서는 종교활동이 중단됐고 6.25동란으로 많은 사찰과 문화재가 손상을 입었다. 1954년 불교계는 일본이 남기고 간 왜색승풍을 청산하기 위해 정화운동을 시작했으나 기득권과의 마찰로 교단들이 분열되고 만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과(제출자료 근거)에 등록된 한국불교 종단은 최대종단인 조계종을 포함 103개 종단(미파악 65개)으로 분열돼 있다. 또한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불교는 우리나라의 최대 종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책임 또한 크다.

최대 종단이기에 불교계 또한 종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 사회에 희망이 되고, 이웃종교 간 상생의 길을 걷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 불교탱화(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서 거는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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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염 2010-04-03 11:04:59
ㅎㅎ 이런거 좀 흥미진진함. ㅋㅋㅋ

수국 2009-09-25 01:18:48
생로병사 그 답을 찾기 위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고행의 길로 들어섰건만 결국 해결하진 못했잖아요

하늘소망 2009-09-24 01:11:39
모든 종교의 근원이 있을것 같아요~

lovecat 2009-09-24 01:02:56
다버려도... 그도 죽었자나요

별 하나 2009-09-23 11:47:33
생로병사의 해결은.. 어찌 할 수 있는건지...알지 못했떤 불교에 관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