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며칠 전 모 방송사에서 재방영한 영화 ‘공공의 적’을 보았다. 2004년 제작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에 나오는 영화인데, 배우 설경구 씨가 서울지검 강력반 강철중 검사로 나온다. 강 검사는 정의심과 사명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검찰청 최고의 골통으로 그가 남긴 명대사가 마음에 울려난다. 상관의 수사 중지 장벽에 맞서 강 검사는 “나쁜 놈은 잡아야죠. 나쁜 놈 못 잡는 게 그게 검사입니까? 저는 이렇게 구린내 풀풀 나는 사건, 이런 놈 하나 못 잡으면 더 이상 검사생활 못한다고 봅니다. 쪽 팔려서요.”라고 부르짖는다. 불의에 항복할거라면, 검사의 위신과 명예가 쪽 팔려 자리를 그만두겠다는 일선 검사의 소신이었다.

검찰의 총수가 13일 전격 사퇴를 했다. ‘채동욱 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조선일보의 의혹 보도가 빌미가 돼 사회문제로 번졌고, 이에 법무부 장관이 공개 감찰 지시가 있자 임기 1년 7개월을 남겨두고 사퇴한 것이다. 그는 사의 표명 전문에서, 지난 5개월 검찰총장으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검찰을 이끌어왔다고 자부한다. 모든 사건마다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입장에서 나오는 대로 사실을 밝혔고 있는 그대로 법률을 적용했으며 그 외 다른 어떠한 고려도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신상에 관한 모 언론의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임을 밝혔는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 수행이 어렵다는 게 사퇴의 변이기도 하다.

총장이 직접 나서 자신은 언론에서 보도된 의혹과는 무관하다고 했건만 직속 상사인 법무부 장관은 언론의 편을 들어 검찰 사상 초유로 총장에 대해 내려진 감찰 지시가 쪽 팔린다는 것일 게다. 이에 서울지역 지검에서는 평검사회의가 열려, 공개 감찰 지시한 이후 곧바로 검찰총장의 사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사퇴 번복을 요구하기도 했다. 게다가 대검의 감찰과장이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밝히면서,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며 불쑥 사퇴를 했다. 그러기에 정치권과 세간에서는 치밀한 검찰 수장 쫓아내기 프로젝트를 의심하는 눈치로 그 포문을 보수언론이 열었다는 의혹마저 나돈다.

들리는 말로는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후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 하에서 모든 걸 법대로 단죄하려는 상황이 여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미 미운 털이 박힌 채 총장을 몰아내려는 불순(?)세력이 작업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 말대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전직 국정원장과 전직 서울경찰청장이 선거법으로 불구속기소하는 과정에서 여권 핵심과 채 총장 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도 나온다. 국정원장과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전 정부의 권력 엘리트들이 지난 대선과 관련하여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있으니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부 국민이 검찰의 강한 의도에 의아해한 것도 사실이다. 같은 정부의 권력 핵심기관인 검찰과 국정원이 대선 개입 의혹사건에서 상호 알력이 생겨나고, 검찰이 전 정부의 국정원장 등 핵심인사를 선거법 혐의로 기소한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현 정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문제도 발생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찰은 의례적으로 국정원을 향해 ‘신메카시즘’이라 지적하면서 국정원 측의 논리를 강하게 반박했는데, 이는 채 총장의 사퇴의 변에서처럼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검찰의 입장이며, 어떤 고려도 없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채동욱 전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에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쪽에서도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그만큼 채 전 총장이 과거 공직에서 불편부당하게 직무를 수행해왔다는 것이고, 검찰총장이 된 후에도 모든 사건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정의의 잣대로 외풍을 막으며 소신 있는 검찰상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가 된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해서는 그는 사실무근이라 주장했는데, 혹자들은 그렇다면 왜 검찰의 꽃이라고 추앙받는 총수 자리를 그만 두느냐 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시기에 갑자기 내려진 장관의 감찰 지시 자체가 현 정권의 핵심들이 검찰총장을 불신하고 있다는 정황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쪽 팔렸을지도 모른다.

세간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를 법의 잣대로 처리한 채동욱 전 총장의 사퇴로 인해 검찰의 의지가 꺾여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그런 사정에 민감한 민주당 쪽에서는 이번 일이 국정원 개혁 요구를 희석하기 위한 여권의 ‘의도적 공작’이라고 보고, 그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하면서 이 문제를 3자 회담 참석 여부와 연계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근본 시각은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임기의 4분의 3도 채우지 못한 채 정치권에서 떠도는 ‘검찰 흔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도중 낙마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감찰 지시와 사퇴로 이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선 채동욱 전 총장만이 그 진실의 실체를 잘 알 것이다. 외풍에 휘둘리는 총수의 신세가 ‘쪽 팔려서’ 사퇴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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