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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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 형식논리학적 모순인 이 명제는 헤겔 철학의 출발점이다. 마치 시공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설파한 붓다의 말씀처럼 유전하는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존재론적 명제다. 모든 존재가 시공에 있다는 전제하에 존재/Sein은 존재/있음과 무/없음의 모순적(변증법적) 통일이요, 이 통일이 곧 생성이고 운동이고 변화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그리고 사물 내의 이 모순성이야말로 “사물의 진상이자 본질”이고, 모든 운동과 생명성의 뿌리인 것이다.

헤겔 존재론의 명제에 맞춰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면 ‘인간은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의 생존법칙이나 진화심리학의 논리에 따라도 그러하다. 이기성과 이타성, 무엇이 더 강하게 발현되는가는 서식처의 환경이 결정한다고 본다. 즉 인간의 서식처인 지구환경의 먹이 활동과 번식의 조건, 생활 환경의 상태에 따라 인간성의 발현 성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은 당연히 공동체의 미덕인 협력과 이타성이 넘쳐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서식 환경에서는 치열한 경쟁과 이기적 본능만이 넘쳐날 것이다.

그런데 이 서식처의 환경을 이제 인간이 스스로 급격히 변화시키고 또 그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그런 세상이 됐다. 인간은 서식처 환경인 자연에 병을 주기도 하고 약도 주는 존재, 자연에 상처를 내고 상처난 자연에 상처를 되받는 존재이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이다.

올해로 세계 인구가 80억명이 됐다. 2011년 70억명이었는데 십년 만에 10억명이나 증가한 셈이다. 1800년대 초반 10억명이었던 인류가 20억명으로 늘어나는 데는 120년이 넘게 걸렸지만 20세기 이후 인구 증가 속도는 12~13년마다 10억명씩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는 800만종이 넘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 80억명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인류가 생활 편의를 위해 닦은 도로는 지구 생태계를 60만 조각으로 쪼개놓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의 총량은 30조톤에 이르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30조톤은 1㎡당 50㎏ 남짓의 인공물들로 지구 표면 전체를 뒤덮을 수 있는 규모다. 그리고 이 엄청난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한 해 수백억톤의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글로벌탄소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탄소 예산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와 시멘트 사용으로 인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올해 366억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토지 개발과 이용에 따른 배출량까지 포함하면 405억톤으로 400억톤이 넘는다. 50억명을 돌파했던 1987년의 배출량 262억톤에 비해 55%가 늘었다.

그 결과 인류의 생태자원 소비량(생태발자국)은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의 양(생태용량)을 훨씬 넘어섰다. 국제환경단체 GFN는 “인류의 현재 자원 소비량을 모두 지속적으로 충당하려면 1.7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인처럼 자원을 쓰려면 5.1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한국인처럼 쓰고 살려면 당장 지구 4.0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선한 인간이 되거나 악한 인간이 되는 것은 순전히 사회적 조건과 생존 환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이제는 인간의 생존 환경인 지구생태계에 인간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세대의 인간이 저마다 내재해있는 선한 본성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서식처의 환경 조성에 노력해야만 한다. 이기성만이 넘쳐나야 살아남는 세상은 우리 세대에서 끊어내야 하지 않겠나.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80억 인구는 지구를 돌봐야 하는 우리의 공동 책임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한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한 ‘공동 책임’과 ‘서로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지난해 포털사이트 ‘구글’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치고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확인됐던 바로 그 단어 ‘기후변화’인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공동책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약속인 탄소제로사회, 밝아온 새해는 ‘기후위기 극복’이 최대의 화두가 되는 한 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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