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병원서 만난 지인·유족

“연기로 한치 앞도 분간 안 돼”

 

폐기물수집 집게 트럭서 난 불

플라스틱 재질벽으로 옮겨붙어

 

사상자 42명, 소실 차량 45대

차 버리고 후진하고 ‘아수라장’

[천지일보=김한솔·최혜인·홍보영 기자] 29일 경기 과천 방음터널 화재로 참변을 당한 사상자들이 평촌 한림대병원 등 인근 병원으로 분산 이송됐다. 원근각처에 있던 유족들은 비보를 듣고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병원에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차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화마에 휩싸인 사망자 5명은 모두 평촌 한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유족들은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내달려왔지만, 기다려달라는 병원 측의 제지에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노심초사 결과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취재진은 화재현장을 겨우 탈출했다는 한 생존자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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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29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사망자 신원 확인을 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천지일보 2022.12.29

조모(59)씨는 성남에서 일을 마치고 동료랑 둘이서 자택이 있는 인천으로 가던 중이었다고 했다. 그는 터널에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심해 죽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료에게 “차에서 나가자”고 말하고 급하게 차에서 나왔다. 그는 당시 연기로 인해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온통 새까만 상태여서 앞차가 깜빡이는 것만 보고 따라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봐도 동료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동료를 잃게 됐다.

그는 황망한 마음속에서도 화재 당시의 모습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펑’하고 큰소리가 난 뒤 불이 났고 이윽고 연기가 현장을 가득 메웠다. 이후 눈 깜짝할 사이 불이 번지고 타고 있던 차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 내부가 급속도로 뜨거워져 차 안에 있으면 그대로 불타 죽을 것만 같아 우선 입을 틀어막고 차에서 뛰쳐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엔 화상으로 인한 물집이 군데군데 보여 당시 화재가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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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29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사망자 신원 확인을 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천지일보 2022.12.29

“터널에서 불이 나 못 가고 있어. 지금 연기를 너무 들이마셔서…”

이번 화재로 숨진 정모씨의 40년 지기 친구 전모(68)씨는 “사고 당시 전화를 했는데 친구가 연기를 마시고 있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후 차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슬퍼했다. 그는 정모씨가 한 회사에 소속된 운전기사로, 당시 행사가 있어 관계자들을 태우기 위해 이동하던 중 화를 당했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정모씨의 아내는 딸들이 남편 차 번호를 봤다는 말에 사고 차량이 남편 차량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자 대성통곡했다. 이후 다른 가족과 통화한 뒤 오열하면서 병원을 뛰쳐나갔다.

숨진 5명의 시신은 모두 훼손돼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문도 확인이 어려워 DNA 검사를 해야만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후 저녁 9시경 숨진 3명이 우선 장례식장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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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IC 인근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제공: 소방청) ⓒ천지일보 2022.12.29

이날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사망자들은 모두 차량 내에서 발견됐다. 승용차 2대에서 각 1명, 또 다른 승용차 1대에서 2명, SUV 차량 1대에서 1명 등 모두 5명이다. 부상자들은 얼굴 화상 등 중상 3명, 연기흡입 등 경상 34명으로 파악됐다. 현재 중상자 3명은 평촌한림대병원(2명), 안양샘병원(1명), 경상자 34명은 서울 성모병원, 안양샘병원, 분당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는 이날 오후 1시 49분께 발생했다. 최초 화재가 발생한 차량은 폐기물을 수집하는 집게 트럭이다. 불은 폐기물 집게 트럭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방음터널 벽으로 옮겨붙은 뒤 급속히 퍼졌다. 이로 인해 터널 양옆으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체 길이가 800여m 규모의 터널 중 수백m 구간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고속도로는 화재가 발생하자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황급히 후진해 터널 밖으로 빠져나가는 등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현재 경찰은 폐기물 수집용 집게 트럭 운전자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30일 오전 10시 30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으로 해당 트럭에 대해 감식을 진행하고 피해자 신원 확인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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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29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사망자 유가족들이 응급의료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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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9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이 통제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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