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근로자 인정 쉽지 않아
법정 싸움 통해 조금씩 지위 확립
어렵게 인정돼도 원청과 교섭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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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 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 민영화 중단, 화물 노동자 총파업 승리’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란봉투법쟁점화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배해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국회 논의가 본격화했다. 노란봉투법을 간절히 원하는 측도 있는 반면 반드시 막아야 하는 법으로 여기는 측도 있다. 왜 이름이 노란봉투인지, 무엇을 개정하려는 것인지, 왜 시작됐는지, 쟁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노동조합의 파업엔 많은 경우에서 법정싸움이 뒤따랐다. 법원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를 살펴볼 판례도 넘친다. 

노조법 2조 1호는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한다. 해당 조항만 본다면 대한민국 시민 대부분은 법률상 ‘근로자’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맹점이 존재한다.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자’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특수고용직이란 일반적인 정규직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계약 등을 맺고 실적 위주의 수당을 받는 이들을 지칭한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회사에 속한 정규직은 아니면서도 회사에 특수한 형태로 고용돼 자영업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말한다.

그렇기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정당하게 가입할 수 있는 이들보다 법적인 보호를 받기 힘들다. 애초에 단독 노조 설립 신고도 잘 안 받아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을 초월하는 산업별 노조(산별노조)에 가입해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면 ‘독립자영업자’라고 하면서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법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법정 싸움을 끊임없이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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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천지일보 DB

◆10여년 법정싸움 끝에 노동3권 보장

학습지 교사들은 노조를 인정받기까지 10여년에 걸친 소송에 매달려야 했다. 재능교육은 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집회를 하자 2010년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중노위도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교사들은 부당해고라며 구제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길고 긴 소송전 끝에 2018년 대법원은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대등한 교섭력의 확보를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조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재능교육에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를 이루고 있는 교사들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서 재능교육에 노무를 제공하는 교사들에게 일정한 경우 집단적으로 단결함으로써 대등한 위치에서 노무제공조건 등을 교섭할 수 있는 권리 등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 33조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 취지를 두고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았던 노무종사자들도 일정한 경우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 헌법상 노동3권을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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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뉴시스]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관계자들은 13일 전북 완주군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정문 앞 도로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정신계승 비정규직 차별철폐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1.13.

◆근로자 인정받으려면 법원 힘 빌려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영업사원은 전국 350여개 지점에 6000여명이, 비정규직 영업사원은 370여개 지점 6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영업사원은 원청인 현대자동차로부터 입사부터 퇴사까지 모든 지휘 감독을 받는다. 현대자동차가 제조한 자동차만을 판매하고, 현대자동차가 지급한 계약서와 테블릿PC, 현대자동차 명함을 들고 현대자동차의 시스템을 통해 정규직 영업사원과 동일한 노동을 한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기본급도 없고, 4대 보험도 안 들어주며, 10년을 성실하게 일해도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영업사원들은 2015년 8월 노조를 설립한 후 교섭을 시도했다. 현대자동차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며 단체교섭 요구를 거절했다. 그리고 대리점 대표들은 노조원 수백명에 대한 해고를 통보했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해고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대리점 대표들은 이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결과는 노조의 승리였다. 서울행정법원도 서울고법도 대법원도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매원의 소득원인 판매수당이 판매수수료에서 차지하는 비율, 인센티브 금액과 그 지급 조건 등도 원고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이는 점, 원칙적으로 대리점을 통해서만 자동차판매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직급체계가 현대자동차 직영점 근로자들과 유사하고 근태관리에다가 표준업무지침 하달, 판매목표 설정, 영업 관련 지시나 교육 등이 이뤄진 사정을 종합하면 대리점이 판매원을 지휘·감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와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가 있는 이상 판매원에게 대등한 지위에서 노무제공계약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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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강제진압과 관련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9.12.

◆원청,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인가 아닌가

하지만 판매원들은 원청이라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를 상대로는 노동3권을 사실상 보장받지 못했다는 게 노동계 시각이다. 판매원들의 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올해 5월 현대자동차 국내사업본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농성투쟁에 나섰다. 이에 현대자동차가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현대자동차와 직접적인 고용관계도 아닌데도 현대자동차의 신용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받아들였다. 

노조 측은 결국 7년 동안 노조가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으면 특수·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은 보장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2010년도에 ‘현대중공업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원청이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부당노동행위의 예방·제거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므로, 구제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법률적 또는 사실적인 권한이나 능력을 갖는 지위에 있는 한 그 한도 내에서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의 대상자인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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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철도노조의 준법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철도노조 태업으로 인한 운행 지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 24일부터 준법투쟁에 돌입한 전국철도노조와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각각 다음달 2일과 이번달 30일 파업을 예고했다. ⓒ천지일보 2022.11.29

◆합법적 쟁의행위 범위 조금씩 넓혀

노동계에서는 합법적 쟁의행위를 협소하게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 2003년 철도노조는 철도민영화·공사화 반대 총파업에 나섰는데, 당시 철도청은 파업이 불법이라며 75억원의 손배소를 청구했다. 법원은 노동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며 불법파업이라고 판단했다. 1·2심을 거쳐 23억 4000여만원의 배상액이 결정됐고, 상고 기각돼 그대로 확정됐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나섰다. 사측이 매각과정에서 비정규직 포함 3000여명을 해고했고,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역시 법정싸움으로 이어졌다. 1심은 정리해고가 경영주체의 고도의 경영상의 결정이라며 쟁의행위를 불법이라고 봤다. 단, 경영악화 등 회사의 책임을 인정해 배상책임을 60%로 제한했다. 

2심은 2019년에야 열렸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간 배상금액은 33억여원에 지연이자 63억여원까지 약 96억원이 쌓여있다. 그래도 쌍용차 노조는 지난달 30일 경찰이 청구한 손배소를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며 숨을 돌렸다.

MBC 노조는 2012년 170여일간 당시 김재철 사장을 퇴진하라는 파업을 했다. MBC는 근로조건을 벗어난 파업으로 목적, 절차, 수단 등이 정당하지 않다며 노조와 노조원 16명을 대상으로 19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준수가 단체교섭 사항이며, 방송사업 종사자의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MBC는 2018년 상고를 취하하면서 재판은 그대로 종결됐다.

#노란봉투법 #노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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