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으로 생산 막히면 기업들 손배소
10여년간 노조에 2700억원 청구
대우조선해양 470억원 손배소 제기
“쟁의행위에 이르게 된 이유 살펴야”

노란봉투법쟁점화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배해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국회 논의가 본격화했다. 노란봉투법을 간절히 원하는 측도 있는 반면 반드시 막아야 하는 법으로 여기는 측도 있다. 왜 이름이 노란봉투인지, 무엇을 개정하려는 것인지, 왜 시작됐는지, 쟁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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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노란봉투법’의 유래는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이 사측에 4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노조원을 돕기 위한 성금을 월급봉투의 상징 ‘노란봉투’에 담아 전했다. 그리고 이듬해 이 캠페인의 이름을 활용한 ‘노란봉투법’이 발의됐다. 이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당시엔 발의만 됐을 뿐 국회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고, 쌍용차 노조 사례처럼 사측이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시들하던 노란봉투법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은 올해 대우조선해양 사태다.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삭감된 임금 30%의 원상회복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도크를 점거하는 파업에 나섰다. 파업은 51일간 지속됐다.

어렵사리 노사가 타협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대우조선해양은 8000억원의 손해가 났다며 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 10월 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 나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한 것”며 “회사의 주주와 채권자,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고려해 준법 경영을 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하청노동자가 뭉친다고 한들 470억원을 배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박 사장 역시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도 올해 파업을 벌였다가 사측으로부터 2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에도 현대제철 하청노조원 641명이 총파업 이후 손배소에 직면했다. 

고용노동부가 10월 21일 발표한 ‘손해배상 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제기된 손배소는 총 151건으로, 청구액은 2752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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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국가·제3자가 노동조합·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사건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제공: 고용노동부)

◆과도한 손배소 막자… 노조법 개정 움직임

결국 기업의 계속되는 손배소를 좌시할 수 없다며 지난 9월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운동본부)’가 출범했다. 

현행 노조법 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단순히 볼 때는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에 의한’ 문구에 주목해본다면 조금 얘기가 다르다. 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노조법이 ‘합법’이라고 인정하는 쟁의행위의 범위는 상당히 좁다고 주장한다. 법조문 대부분이 파업을 불법화하는 내용인데, 이 법을 근거로 한 파업만 배상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파업을 제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노조법 2·3조를 현실에 맞게 바꿔 기업이 노조에 대해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노란봉투법 운동의 핵심이다.

운동본부 출범에 맞춰 정치권도 노란봉투법을 잇따라 발의했다. 현재 국회엔 정의당 이은주 의원 등 56명이 발의한 개정안을 비롯해 여러건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10월 13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나 “소유권을 침해하게 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라며 “공산주의가 소유권을 박탈해서 개인의 자유가 없어지는 거로 가면 안 된다”고 노란봉투법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지금 노조를 좀 누를 수 있는 게 손배소인데 그것까지 뺏어가면 아무 힘이 없다”고도 했다.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것은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김 위원장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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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안채린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국 동시 결의대회’를 열고 일명 ‘노란봉투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22.09.24

◆“사측, 간접고용으로 단체교섭 책임 회피”

하지만 운동본부는 왜 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이르게 됐는지부터 살펴야 한다고 본다. 

운동본부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감행하기까지는 사용자 측의 단체교섭 거부 등 부당노동행위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원청 사용자들은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형식적 근로계약관계 만을 앞세워 하청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를 줄곧 거부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개별 근로자가 일일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근로조건을 정한다면 협상력이 낮은 근로자는 본의 아니게 열악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사가 대등한 협상력을 보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근대법은 이러한 고려에서 ‘노동조합’ 제도를 도입하고 근로자의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서 보장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3권이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말하며, 대한민국 헌법 33조는 이 노동3권을 보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단체교섭권이다. 운동본부는 “개별적으로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어 노조를 조직한 근로자들이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적극적·실질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노동3권이 비로소 보장된다는 점에서 단체교섭권은 노동조합 제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1990년 판례를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다는 생존권의 존재 목적에 비춰 볼 때 위 노동3권 가운데에서도 단체교섭권이 가장 중핵적 권리”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노조법도 81조를 통해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자체를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문제는 사측이 일면적인 근로계약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간접고용을 통해 사내하청·위임·도급 등 복잡한 관계를 만드는 때다. 간접고용을 이유로 사측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버티면 해결이 쉽지 않다.

최근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기업의 행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시라는 게 운동본부의 주장이다. 하청업체에게 근로계약을 떠넘기고, 우위를 이용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30%씩 깎아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청업체는 원청에 책임을 떠넘기고, 원청은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이 무력해졌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쟁위행위 끝에 수백억원의 손배소로 이어졌다고 운동본부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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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래군(왼쪽 두번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09.29.

◆임금삭감≠손해, 생산중단=손해?

또 “사용자의 방만한 경영이나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사용자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할 때에는 이를 근로자들이 배상받아야 할 ‘손해’라고 부르지 않는데, 사용자들이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해 근로자들이 단체교섭권을 보장받기 위해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며 쟁의행위를 했을 때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되면, 이는 사용자가 근로자들로부터 배상받아야 할 ‘손해’라고 부른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쟁의행위를 즐기는 노동자는 없다. 많은 쟁의행위가 근로자들과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야기된다”며 “쟁의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업장의 손해에 사용자가 아무런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노란봉투법은 아무런 잘못 없는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당케 하는 법이 아니라, 노사관계에서의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균형을 회복함으로써 헌법상 노동3권의 취지와 노동조합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법”이라고 전했다.

#노란봉투법 #노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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