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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원인 과로·징계·인사 등 꼽혀

근속연수 5년 이하 과반차지

“괴롭힘이 우울증·불안 야기”

“사전 ‘검진제도’를 도입하고

과로사방지법 등 법제화해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최근 3년간 근로복지공단이 직장 내 극단적인 선택을 ‘산업재해’라고 인정한 사례들 대부분이 과로와 징계·인사처분, 괴롭힘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용혜인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극단적 선택을 산업재해라고 인정한 사례는 총 161건으로 확인됐다.

업무상 질병 판정된 사례들은 과로로 인한 죽음 58건(36%), 징계·인사처분 52건(32.3%), 직장 내 괴롭힘 48건(29.8%)이 원인(중복 사유 포함)으로 조사됐다. 근속연수별로 살펴보면 1년 미만이 18%, 5년 이하가 50%를 차지해 근속이 적은 노동자가 산재에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최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삶)는 “이번 산재 사건 중 직장 내 괴롭힘이 그 사유로 포함된 경우가 법 시행 이전과 이후로 봤을 때 21%에서 44%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에 관련한 문제 제기와 그것에 대해 질병판정위원회에서 판단하려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최근 3년간 극단 선택 산재 현황 분석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최 노무사가 ‘산재 인정 판정서 분석’을 발표했고, 정여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전문의가 ‘직장 내 괴롭힘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발제했다. 이어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가 ‘산재의 문제점과 대안’, 임혜인 노무사가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와 제언으로 토론을 진행했다.

먼저 용혜인 의원은 “모멸적 실적 압박과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도 참아야 하는 업무 환경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부당업무지시 불이행 징계 금지법을 비롯해 실효성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공기관 차원에서 극단 선택을 산재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유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며 “산재가 은폐되지 않도록 공공기관의 적극적 역할과 제도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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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권두섭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노동자의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며 “지난 3년간의 사례를 보면 원인이 드러나고 극단 선택이 있기까지 몇 번의 기회를 우리 사회가 찾아낼 수 있지 않지 않았을까.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필요한 법제도 개선과 정부의 정책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최 노무사는 “이번 산재 사례 중 약 60%가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제대로 된 심사 ▲업종·직종별 모니터링 강화 ▲입증 책임 사용자 부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극단 선택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과로사 방지법·정신질환 검진제도 도입·직장 내 괴롭힘 예방 등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각종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도 소개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제보된 1135건 중 괴롭힘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제보는 총 450건으로 나타났다. 그중 피해자들이 경험했던 정신적 고통의 유형은 불안(27.3%), 우울(24.2%), 불면(18.2%), 극단 선택 충동(13.3%), 기타 (3.6%) 등으로 이어졌다.

사례들 중에선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산재를 신청한 후 사업주로부터 불이익을 당한 사례도 확인됐다. 산재를 신청하자 피해자를 해고한 사례뿐 아니라 보험가입자 의견서에 ‘피해자가 평소에 과소비했고, 산재 신청 또한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한 것’이라는 2차 가해성 내용을 기재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사례가 나왔다. 아울러 사용자가 보험가입자 의견서 제출을 지연해 산재 처리 기간을 고의로 지연한 사례들도 있었다.

이날 정여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직장 내 괴롭힘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는 총 63개의 연구를 대상으로 “우울증과 불안증상, 범불안장애, PTSD, 스트레스 관련 증상 보고, 업무상 소진과 직장 내 괴롭힘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드러났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남성에게 극단 선택 행동(시도)의 증가와 직장 내 괴롭힘의 노출 관련이 있었다는 결과(Conway et al., 2022)도 공유했다.

정 전문의는 “직장 내 괴롭힘이 우울증과 불안 증상 등의 정신 건강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유의하게 높다는 점이 보고된다”며 “일부 직종, 특히 보건의료계통에서 괴롭힘 행위가 업무 수행을 향상시킨다는 그릇된 믿음이 존재하는데 괴롭힘이 일어나기 쉬운 조직과 사회적 조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산재 인정 사유와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지 아니한 사건, 과로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거나 과로 요인이 없는 사건, 징계 및 인사처분이 사용자의 정당한 인사권으로 판정된 사건에서는 소극적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속연수가 적을수록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에 대해 “정신질환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검진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규칙 개정으로 직무 스트레스 예방조치에 대한 규율과 장기적으로 과로사방지법 등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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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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