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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시행 3년 2만건 접수됐지만

전체 중 84% 취하 또는 반려

검찰송치 사례 0.7%에 불과

과태료 부과도 119건에 그쳐

제보 1609건 중 ‘괴롭힘’ 최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 사업주에게 밤늦게 전화로 수차례 성희롱 피해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가 해고까지 당했습니다. 성희롱은 신고해서 인정받아 사업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는데 직장 내 괴롭힘은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반려시키더라고요.

#2.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팀장으로부터 업무배제를 당했는데 책상 앞에 온종일 가만히 앉아 있게 하고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심지어 며칠 전에는 팀장이 지시한 일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며 “씨X, 이 X끼”라는 욕설도 들었습니다. 혹시 몰라 녹음은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이 시행된 지 올해 하반기로 4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근로 현장에서 직장 갑질을 근절하려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고용부에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고용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이 시행된 후 지난 8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2만 424건 중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0.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회사에 공문을 보낸 ‘개선지도’는 전체 중 12.8%에 그쳤고, 대다수인 84%는 취하되거나 반려됐다. 직장에서 갑질을 당해 노동청에 신고한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셈이다.

윤건영 의원실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괴롭힘 신고는 해당 기간 총 2만 424건 중 폭언이 8841건(34.2%)으로 가장 많았고, 부당인사 3674건(14.2%), 따돌림·험담 2867건(11.1%) 순이었다. 신고 건수는 법 시행 다음 해인 2020년 5823건에서 지난해 7774건으로 33.5%나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 4697건으로 급증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처리 결과다. 노동부에 신고된 2만 424건 중에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133건에 불과했고, 회사에 공문을 보내 개선을 요구한 ‘개선지도’가 2624건이었다. ‘취하’ 7924건과 ‘기타’ 9226건을 더하면 전체 중 80%가 넘는 1만 7150건이 취하되거나 반려됐다.

‘기타’로 분류된 사건은 ‘법 적용 제외’와 ‘법 위반 없음’이 대부분이다. 법 적용 제외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도급·하청·용역·특수고용·프리랜서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10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사용자(친인척 포함)인 경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 조사·조치의무를 위반한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법 개정 이후부터 8월 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 건 119건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 측은 “법 조항별 과태료 처분현황은 별도로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으며, 시정할 수 없거나(이미 발생한 괴롭힘 행위나 비밀누설 등) 시정에 불응하는 119건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폭행·폭언·차별·보복 ‘지속’

“신생기업에서 일하는 개발자인데, 어느 날 사장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제 발을 걷어차고 멱살을 잡고 쌍욕을 하며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리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간신히 말려 주먹을 맞지는 않았는데요. 노동부에 신고하면 사장님이 처벌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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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신고된 신원이 확인된 제보는 총 1609건이었는데, 그중 직장 내 괴롭힘이 1040건(64.6%)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로 임금 350건(21.8%)과 징계·해고 340건(21.1%), 근로감독, 기타 199건(12.4%) 순이었다. 괴롭힘 유형별(중복집계)로 보면 부당지시가 513건(49.3%)으로 가장 많았고, 폭행·폭언 477건(45.9%), 따돌림·차별·보복 448건(43.1%) 순으로 이어졌다.

또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괴롭힘 경험은 비슷했지만, ‘심각하다’는 응답은 5인 미만 사업장이 46.5%로 공공기관(30.8%)보다 15.7%나 높았다. 

장종수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일부 규정 중 가장 반인권적인 부분이 바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사항으로, 해당되는 350만 이상의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도 제도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다”며 “이들과 법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9월 2일부터 8일까지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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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과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7.2전국노동자대회’에서 임금·노동시간 후퇴 저지, 비정규직 철폐, 물가 안정 대책, 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2

#갑질 #5인 미만 #괴롭힘 금지법 #근로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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