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예비한 제호 ‘천지일보’
중도개혁을 표방하며 문을 열다
‘의식을 깨우는 정론
화합과 상생의 주춧돌
창조적 그린 미디어
문화강국 지향에 기여’

 
2009년 9월 1일, 본사가 세상에 문을 연 날이다. 오래 참았다가 이제 세상에 필요하다 함을 알고 세상 가운데 급히 보내진 천지일보, 그 천지일보의 네 번째 돌이 찾아 왔다.

이 지구촌엔 수많은 언론사가 각기 제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지만 ‘천지(天地)’의 이름만큼은 갖지 못했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이름값을 한다’는 구전(口傳)되어 오는 말이 있으니, 어쩌면 이 때를 위해 예비된 이름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인즉 이를 알고 마치 시기라도 하듯 이 세상에 태동할 때부터 그렇게도 훼방이 많았기 때문이다.

숱한 사연과 함께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천지일보는 ‘중도개혁(中道改革)’이란 모토로 시작을 알렸다. 중도란 좌(진보)도 우(보수)도 아닌 가운데의 입장과 어정쩡함과 우유부단함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개념이며, 그 어느 쪽이든 옳고 바른 쪽에 서는 것이며, 그렇기에 진리요 진실이며 나아가 정의를 구현시키려는 차원 높은 종교적 개념으로 확대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시대 언론이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언론의 사명을 진단해 보면 정보전달과 지도기능이라는 오피니언적 사명이 있지만, 오피니언적 사명보다 오히려 독자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준다는 명분하에 경쟁적 논리로 무차별적이며 무책임한 정보전달에 매여 언론의 기능적 한계를 자처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작금의 이 시대는 문명의 이기(利己)로 인해 정보의 홍수시대를 맞으며 새로운 언론의 역할을 주문해 왔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본지는 중도개혁이란 모토아래 시대에 걸맞는 사시(社是) 즉, 신문사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의식을 깨우는 정론’이다. 모든 결과의 시작은 바로 생각과 의식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비뚤어지고 잘못된 가치관과 순리에서 벗어나 역리(逆理)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만 데는, 허무한 데 굴복할 수밖에 없는 근본된 원인이 분명히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신과 사회와 나라를 바로 보고 읽고 느끼게 해주지 못한 언론의 책임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언론은 정보전달을 넘어 이 시대를 깨워 선도하는 계몽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 암울한 시대에 그 시대를 깨우친 심훈의 상록수같이 말이다.

두 번째로 ‘화합과 상생의 주춧돌’이다. 우리는 예부터 우수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 반대급부로 나타난 역사적 진실이 있으니 분열과 갈등이다. 그것이 유전되어 오늘에 와서도 우리의 미래를 발목잡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가 화합하고, 종교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이해와 배려로 다시금 태어나야 하며, 그 곳에 우리의 미래가 보장받을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창조적 그린 미디어’다. 언론이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대표적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선정성 폭력성 기사와 광고다. 돈을 앞세워 나라의 미래 즉,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정신적 해악을 끼치는 일에 언론이 앞장서 왔으니, 한 쪽으론 정론을 앞세우는 언론의 이중성이요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현주소다. 그러나 천지일보는 선정성 폭력성 대신 획기적이고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깨끗한 내용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음을 온․오프라인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네 번째로는 ‘문화강국 지향에 기여’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란 글을 통해 우리나라가 힘 있는 강국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그야말로 소원을 남겼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이어온 찬란한 문화, 이 숭고한 가치를 오늘에 사는 우리가 되살려야 할 사명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무지로 말미암아 빼앗기고 갈라지고 소멸되고 왜곡된 우리의 영토와 역사 그리고 문화엔 온 인류가 반드시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인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사상과 함께 홍익문화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 속엔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영성(靈性)이 내제된 종교문화로 이어져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익히 김구 선생이 소원한 ‘높은 문화’는 하늘문화요 나아가 종교로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할 종교문화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 천지일보는 ‘글마루(최고의 문화)’를 함께 발간하며 그야말로 온 세상을 하늘의 문화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글만 읽고 말만 앞세우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 아닌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가 되어 약속하고 천명한 것을 반드시 이뤄내는 천지일보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분명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해져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지닌 유일무이한 신문사로 우뚝 서야 할 시대적 숙명 앞에 천지일보는 서 있음을 깨닫게 되며 또 다짐하게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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