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도성 발굴 조사 모습(왼쪽)과 발굴 현장 전경 (사진제공: 서울시)

서울시, 회현 중앙광장 일대서 발굴
남산 회현자락 3단계 정비사업 구간
日, 신궁 건립하려 한양도성 777m 훼철
이 일대 훼철된 단일 규모로 가장 커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대한제국이 일제 식민지였던 시절 일본은 수도 한양도성을 변형시키고 한양공원(1910)과 조선신궁(1925)을 조성, 건립했다. 일제 때 세워진 신사는 일종의 종교시설로 전국적으로 1062개에 달했다. 그중 지위가 가장 높은 것은 조선신궁으로 남산 회현 자락에 1918년 건립하기 시작해 1925년에 완공했다.

일본은 조선신궁에 일본 건국 신화의 주역인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와 1912년에 죽은 메이지 천황을 안치해 한국인으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를 강요했고, 식민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1925년 신궁을 완공해 진좌제(鎭座祭, 신을 안치시키는 것) 행사에 앞서 경성역(현 서울역)을 개통했는데, 당시 개통식에서는 신궁에 안치할 일본 신(神)들의 신표를 부산역에서부터 경성역으로 이송해 일본 신들이 조선에 문명을 가져온다는 대대적인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광복 후 195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건립되고, 동·식물원과 분수대(1970)가 설치돼 지난 100년 동안 한양도성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지내왔다.

최근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발굴 조사한 ‘남산 회현 자락 3단계 정비사업 구간’인 중앙광장 일대에서 발굴 조사한 지 한 달여 만에 한양도성 유구를 확인했다.

중앙광장 일대는 일제가 한양공원 조성과 조선신궁 건립을 위해 지형을 절·성토해 크게 변형시키고, 한양도성 777m를 훼철한 지역이다. 한양도성이 훼철된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한양도성 복원을 위한 ‘남산 회현 자락 정비사업’을 3단계에 걸쳐 추진, 1단계로 힐튼호텔 앞 아동광장 일대 성곽 84m(2009), 2단계로 백범광장 일대 성곽 245m(2012)에 대한 복원 사업을 각각 완료했다. 3단계 구간인 중앙광장 일대(교육정보연구원~분수대~구 식물원 터) 약 448m는 지난 6월 발굴에 착수했다.

이번에 발굴된 한양도성 유구는 성곽으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12개의 시굴조사 지역 중 먼저 시굴에 들어간 분수대 근처 세 곳에서 모두 확인됐다. 시굴조사로 확인된 기저부와 성체는 곳에 따라 다르지만, 지표면으로부터 3m 깊이에서 4~5단인 곳도 있고, 6~7단인 곳도 있으며 유구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서울시는 “이번 발굴은 경성·용산 시가도 등 기록만 있고 잊혔던 회현 자락의 한양도성이 1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며 “앞으로 한양도성의 정비방향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 조선신궁 당시 모습 (사진제공: 서울시)

특히 이번 시굴조사에서는 한양도성 옆에 조선신궁 잔재로 보이는 특이한 콘크리트가 확인돼 남산 회현 자락 구간이 침략으로 인한 인류 문화 훼손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이며,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완전성(Integrity) 입증에 유리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세 곳 모두에서 한양도성의 유구가 확인된 만큼 앞으로 발굴하는 구간에도 성곽이 땅속에 보존돼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3단계 구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 올해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3단계 구간은 발굴된 유구의 보존과 정비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된다.

이를 위해 이미 한양도성 추정선에 위치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청사를 철거했으며 발굴구간에 위치한 남산 분수대와 수목들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철거 및 이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출토된 한양도성 유구의 보존·정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검토를 거쳐 2014년 2월까지 설계를 완료해 2014년 사업에 착수, 2015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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