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여 년 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다. 이 영화 제목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입시공부에 시달렸던 청소년들이 열광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더 난리였다. 공부 못하면 인생 끝장난 줄 알았던 청춘들에게 이 말은 달콤한 위안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그러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행복의 기준이 과연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들보다 돈이나 권력을 많이 가지고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사는 게 행복이라고 하면, 대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그 무리에 속한다.

공부나 일류대학 하고는 담쌓은 사람들 중에서도 빛나는 성취를 이뤄내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공부 잘해서 출세한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 공부하고는 인연이 없었음에도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는 사람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산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들만의 튼실한 울타리 속에서 복을 누린다. ‘제빵왕 김탁구’처럼 한 가지 재주만 가지면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 소리 듣고 산다.

그러니, 부모들이 자식들 공부에 올인 하고 좋은 대학 보내려고 아등바등 한다. 국제중이니 외고니 하는 좋은 중고등학교들이 인기가 높은 것은 다 그 때문이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제 자식들 그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것이다.

부정 입학이라는 게 다 있는 집 이야기이고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제 따위를 운운하며 비난을 하지만, 형편만 되면 그렇게 해서라도 내 자식 그 학교에 보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공정한 게임, 정정당당한 승부보다는 변칙과 잔꾀가 더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지켜봤던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허물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한다. 부정과 비리일망정 형편이 안 돼 못해 주는 게 미안할 따름이라는 부모도 많다.

새벽에 도서관 앞에서 자식 대신 줄을 서 주는 것도 자식을 위한 아름다운 부모의 모습이라 여긴다. 내 자식 잠 좀 더 자게 해 주려고 부모가 자식 또래 아이들 틈에 끼어 줄을 선다. 내 자식 잠 좀 더 자게 해 주는 것도 좋지만, 남의 자식 졸린 눈 비비며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선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참으로 괴이하다.

요즘 부모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선생 어느 학교 나왔어?” “때리고 오지 왜 맞고 와?” “그 친구 몇 평짜리에 사냐?”고 말한다. 그런 소리 하는 부모는 자신이 무척 잘났고 멋있는 줄 안다. 아이들도 그 소리가 당연한 줄 안다.

세상이 그러함에도, 여전히 선생님 말씀이 하늘인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부모도 많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공하는 세상이 온다. 믿기 어렵겠지만, 틀림없다. 스펙보다는 호감이 중요한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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