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문관(無門關)을 앞둔 선우스님이 주지스님·은사스님과 만행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백두대간)
‘사이에서’ 이창재 감독, 숨겨진 사찰이야기 공개
1년에 단 2번 열리는 백흥암서 수행에 대해 말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삶에 지쳐 괴롭다면 영화 ‘길 위에서’를 통해 속세를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는 중저음의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된다. 감정을 호소하거나 동정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목소리는 영화를 만든 이창재 감독 자신의 목소리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장면을 소개하거나 읊조린다.

데뷔작 ‘사이에서’에서 비범한 영상미를 보여준 이창재 감독은 이번영화에서 스님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영상미를 포기하진 않았다. 봄‧여름‧가을‧겨울 백흥암에 스며든 사계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돌이켜 보면 무모한 시도였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무모한 시도였다. 깊은 산속 법당에서 목 놓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난 그 이유가 궁금해서 한 달 동안 취재를 요청했다.”

이 감독은 ‘부처님 오신 날’과 ‘백중날(음력 7월 15일)’ 등 1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린다는 백흥암(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을 찾았다. 이곳은 일반인의 촬영도,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된 조계종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촬영이 진행되는 300여 일 동안 그는 총 4회에 걸쳐 백흥암에서 추방됐다. 주지스님과의 만남에서 어렵게 촬영이 허락됐지만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구니스님들은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고 왔는데 왜 감독님과 촬영을 해야 하나요?”라고 이 감독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이 감독의 끈질긴 집념으로 촬영이 허락됐다. 새벽 3시 예불부터 밤 9시 취침까지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감독은 이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 (사진출처: 백두대간)
◆앵글 속 스님들은 수줍은 소녀
스님들은 독방에 들어가 3년 동안 묵언수행 하는 무문관(無門關)을 하기 전에 세상을 돌아보고 수행을 점검하는 만행을 다녀온다. 수행 전 마지막 세상 구경인 셈이다. 만행을 떠난 스님들이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우리도 21세기를 살아요”라고 말하는 스님들은 불교라는 외딴섬에서 다름을 외치는 종교가 아닌 친근한 우리 이모, 언니들의 모습이었다. 어렵게 마음을 연 앵글 속 스님들은 수줍은 소녀였다.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불교 다큐멘터리와 달리 영화는 수행을 통해 사람을 말하고자 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영화는 중간마다 한 번씩 질문을 던진다. 그렇지만 영화가 답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스님들도 계속해서 답을 찾는다. 37년간 수행의 길을 걸어온 영운스님은 아직도 수행이 어렵다고 말한다. 영화는 그들의 수행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통해 관객이 자신에게 답을 내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수행 통해 길 찾는 스님들
스님들은 각기 다른 사연으로 출가한다. 백흥암의 젊은 스님들도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미국 유학파 상욱스님은 3년간의 젠(Zen) 센터 경험을 바탕으로 스님이 되기로 했다. 집에 출가하겠다는 내용의 쪽지 한 장 놓고 나온 스님은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속마음도 말하지 못했다.

선우스님은 대부분의 스님들이 염원한다는 동진출가(童眞出家)를 했다. 어려서 절에 버려져 선택권이 없었다. 스님은 “동진출가를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스님들을 부러워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출가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스님은 이 길을 택했다. 스님은 수행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까르르…” 고요하고 한 사찰의 이미 다소 어색한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절을 찾아왔다는 민재행자다. 붉은 두 볼과 천진난만한 표정을 갖고 있는 민재행자는 백흥암의 비타민이다. 행자는 스님으로서 수계를 받기 전 단계의 수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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