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비슬산②] 하늘과 맞닿은 절터 ‘대견사지’
[청도-비슬산②] 하늘과 맞닿은 절터 ‘대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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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타는 산 ‘비슬산(琵瑟山)’

▲ 대견사지 ⓒ천지일보(뉴스천지)

관기와 도성의 얘기를 품고 일행은 일연스님이 머물렀다고 알려진 용천사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비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높이에 비해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간간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을 뒤로한 채 마령재까지 오르니 대견사지(大見寺址)로 가는 길과 비슬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먼저 관기가 있던 남쪽 자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견사지로 향하는 길이었다.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며 대견사지가 있는 길을 오르니 오른편에 장관이 펼쳐진다. 참꽃 군락지였다.

조화봉 정상이 있는 부근에서 대견사지로 가는 일대가 만개를 한창 준비하는 참꽃으로 가득했다. 이 높은 지역에 이리 너른 들판 같은 곳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온통 분홍빛을 머금은 참꽃이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이 더 진기함을 자아냈다. 산 능선을 따라 한참 참꽃을 즐기며 걷다 보니 벌써 대견사지에 닿았다.

▲ 도를 닦고 있는 부처처럼 보이는 부처바위 ⓒ천지일보(뉴스천지)

신라 때 중국의 당태종이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물을 담아온 대야를 봤는데 그 물에 웅장한 산정에 세워진 고운 절터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태종은 이를 하늘의 계시라 여기고 당나라뿐 아니라 나라 밖까지 뒤져 물에 비친 절터의 실체를 찾았다. 왕의 명을 받고 나라 밖을 뒤지던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의 곳곳의 절을 찾다 비슬산까지 이르렀다.

정상을 향해 오르던 그들은 이 대견사지에 올라 드디어 계시의 실체를 발견했다. 이에 당태종에게 사실을 보고하니, 당태종은 특별 하사금까지 보내 이곳에 절을 짓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나라까지 비쳐서 ‘큰 나라의 왕이 본 명당’이라는 의미로 ‘대견(大見)’이라 불렸다. 신기하게도 아주 높은 산정에 반듯하게 놓인 대견사지에 오르니 왜 당태종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는지 알 것 같다.

절터 바로 아래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 탁 트인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기서 대마도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이 위에 터가 있는 것만도 신기한데 절터 앞에 넓고 커다란 바위 끝에는 이 바위를 바닥으로 해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이 서 있다.

보고 있자니 아슬아슬 진기하다. 석탑 앞에 서서 내려다보이는 경관 또한 장관이다. 왼편으로는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의 ‘암괴류(岩塊流)’와 ‘애추(Talus)’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또 남쪽에는 관기가 도를 닦았다는 관기봉이 뾰족이 솟아있다. 암괴류와 애추를 따라 출렁이듯 이어지는 산맥을 따라 내려가니 그 끝에 펼쳐진 달구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뒤를 도니 대견사지 주변에 자리 잡은 부처바위, 형제바위, 층바위 등의 화강암체인 ‘토르(Tor)’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우뚝 솟은 바위들이 파수하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성천왕의 약속이 떠오른다. 마치 정성천왕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비슬산에 오른 성인들이 약속이 이뤄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일연스님도 이 모습을 보고 삼국유사에 비슬산이야말로 ‘도(道)’를 통하는 ‘도통의 산’이라 강조했나 보다. 일연스님의 말처럼 또 전설처럼 비슬산에는 많은 성인이 머물렀다. 또 약속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아주 많은 성인을 배출할 곳이기도 하다.

▲ 형제가 서로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듯 보이는 형제바위 ⓒ천지일보(뉴스천지)

▶ [청도-비슬산③]편에 계속됩니다.


[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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