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유언불신(有言不信)
[고전 속 정치이야기] 유언불신(有言不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는 두 강자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어느 한 쪽을 지지하여 그의 성공에 기여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정확한 형세를 가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다리를 걸치거나 양쪽을 모두 적으로 돌렸다가는 자살이나 다름이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투쟁에서는 형세를 가늠하여 일단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끝까지 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부수는 형세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양다리냐 결단이냐는 강자의 사이에 끼인 약자에게 가장 어려운 판단이다.

십육국시대 전연(前燕)의 대장 모여근(慕輿根)은 모용황(慕容皝)을 따라서 수많은 전공을 세워 상당한 신임을 얻었지만 재능과 공을 내세워 지나치게 거만했다. AD 350년 봄, 모용준(慕容儁)이 죽고 태자 모용위(慕容暐)가 즉위했다. 태원왕(太原王) 모용각(慕容恪), 대사공(大司空) 양목(陽鶩), 대사도(大司徒)이자 상용왕(上庸王)이었던 모용평(慕容評)과 모여근이 유조에 따라서 보정으로 임명되었다. 모용각은 태재(太宰), 모용평은 태부(太傅), 양목은 태보(太保), 모여근은 태사(太師)로 승진했다. 권력을 장악하려던 모여근은 특히 모용각을 견제했다. 마침 황태후 가족혼(可足渾)씨가 조정에 간여하자 반발한 모용각은 사퇴의사를 밝혔다. 모여근은 둘의 갈등을 부채질했다. 모여근은 먼저 모용각을 부추겼다.

“주상이 어리다는 구실로 모후가 정치에 간여하십니다. 추기(樞機)의 지위를 차지하신 전하께서는 만약의 변고에 대비하여 안전책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천하의 안정은 전하의 공입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뒤를 잇는 것은 고대에도 있었던 제도입니다. 선제의 장례가 끝나면 대연(大燕)의 무궁한 복을 위해 주상을 폐출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르도록 하십시오.”
놀란 모용각은 정색하고 거부했다. 모여근은 황급히 물러났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모여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태후와 연주 모용위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태재 모용각과 태부 모용평이 반역을 도모하니 신이 그들을 죽이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태후는 허락하려고 했지만 어린 모용위는 만만한 군주가 아니었다.
“두 분은 국가의 인재이자 황실의 근친으로 선제께서 친히 짐을 보좌하라고 선택하신 분들입니다. 오히려 모여근이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여근은 두 강적을 이간질했다가 실패하자, 양쪽 모두로부터 의심을 받았다. 모용각은 모여근의 말을 오왕(吳王) 모용수(慕容垂)에게 그대로 전했다. 모용수는 즉시 모여근을 죽이라고 권했다. 비서감(秘書監) 황보진(皇甫眞)도 모용각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소인배였던 모여근이 선제의 후은을 입고 고명대신이 된 것부터 잘못입니다. 지혜도 아는 것도 없는 인간이 나날이 방자해지니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명공께서는 주공(周公)과 같은 위치에 계십니다. 마땅히 사직의 안전을 위해 만약의 사태를 예방해야 합니다.”

모용각은 대상(大喪)을 치러야 할 때이고, 주변국이 우리의 불행을 이용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우선은 참아야 한다고 달랬다. 얼마 후 모여근은 도성을 업성(鄴城)에서 용성(龍城)으로 옮기자고 건의했다. 태후와 모용위는 비로소 진상을 알고 모여근과 그의 삼족을 모두 죽이라는 조칙을 내렸다.

소인배였던 모여근은 두 강적인 연의 숙질 사이에 반드시 틈이 벌어질 것이라고 오판하고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붙어도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용각은 충심으로 황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던 사람이었으며, 어린 모용위도 명철한 판단력과 자신이 등용한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심지가 굳은 군주였다. 두 강적이 모두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손을 쓸 도리가 없어진 것이었다. 모여근이 어느 한 쪽에 철저하게 의지했다면 성공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일패도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쪽 모두를 건드린 결과 그는 칼자루를 상대에게 넘겨주어 협공을 당하게 되었으니, ‘유언불신’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