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가 지난 9일, <대선평가보고서(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근본 원인은 ‘친노 패권주의’ 때문이며, 그 핵심 인사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친노 핵심인사들을 실명으로 언급했다. 사실상 그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 존망이 걸려있는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혁신의 핵심 대상을 실명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친노 핵심 인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치적 편향에 사로잡힌 <보고서>라는 말도 나왔고, 사적인 감정이나 정략적인 의도로 작성됐다는 비판도 있다. 이들의 반발을 종합하면 한마디로 ‘친노 죽이기’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이다. 심지어 ‘제2의 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대표적인 친노 인사인 배우 명계남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XX놈들아! 보고서 쓴 놈 나와!”라는 격한 표현을 남기며 곧바로 민주당 탈당을 선언하였다. 보고서가 던진 화두를 계기로 당내 친노와 비노의 한판 대결이 본격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썩은 사과는 도려내야 한다
이들 친노 인사들의 울분과 눈물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저 정권교체를 위해 앞장섰을 뿐이고, 온 몸을 던져 문재인 후보를 도왔을 뿐이라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 하는 것은 분하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정치적 책임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던가. 열심히 싸웠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지면 패장이다. 그것도 이길 수 있었던 싸움을 무능과 자충수로 졌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 일찌감치 석고대죄하고 벌써 정계를 떠났어야 했다. 그래야 당이 살아남고, 새로운 가능성이 잉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조차 폄훼하며 욕설까지 해대는 모습이라면 그들에게는 정말 희망이 없다.

<5.4 전당대회>가 ‘혁신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는 데는 모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에서 논란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답은 간명하다. 어렵게 만들어 낸 <보고서>를 당 혁신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잘 알고 있다. 그 위기의 본질을 이번의 <보고서>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내용을 깎아 내리고 그 취지마저 정략으로 비난하는 행태는 그 자체가 정략적이요, 반개혁적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끝까지 지키고, 당 혁신의 동력마저 무력화시켜서 무엇을 또 얻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친노 핵심인사들의 살 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민주당에게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다.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5.4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당 혁신의 대상을 제대로 짚어내고, 매몰차게 그 대상들을 제거해 내지 않으면 민주당의 미래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이 최소한의 민심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의 현실과 과제를 제대로 진단해 낸 이번 <보고서>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곳곳에서 저항세력들이 죽자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저항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그 저항을 넘어 마침내 당 혁신을 성취해 낼 것인지가 생사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또 어정쩡하게 절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다. 썩고 병든 곳을 도려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 또한 민주당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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