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기성 vs 개혁’ 치열한 대결의 장

▲ 오후에 콘클라베가 시작되는 12일 오전 선거권 유무와 상관없이 전 추기경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여 마지막 미사를 보고 있다. 추기경단 단장인 소다노 추기경이 집전하고 있다. 뒷쪽에 일반 신도들이 보인다.(사진출처: 뉴시스)

철통 보안 속 ‘새 교황’ 세계인 이목 집중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 콘클라베가 12일(현지시각) 로마의 바티칸 궁에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눈에 띄는 지지후보가 없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 추기경들의 보이지 않는 ‘물밑 정치’ 또한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콘클라베를 둘러싸고 형성된 대립 구도는 ‘유럽권 대 비(非)유럽권’이라기보다는 ‘기성세력 대 개혁세력’의 다툼으로 벌어졌다. 교황청의 기성 권력을 쥔 주류 관료 집단은 현상 유지적 통치를 펼 교황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기성세력집단이 비 유럽권이지만 교황청과 관계가 가까운 브라질의 오딜로 페드로 스체레르(63) 추기경(상파울루 대교구장)을 차기 교황으로 밀고 있다고 전했다.

스체레르 추기경은 이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교황 다음 서열인 교황청 국무원장에 이탈리아 출신의 내부 인사를 임명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비 유럽권 출신에게 교황직을 내주는 대신, 일상업무를 총괄해 실권을 거머쥔 바티칸 ‘2인자’는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우자는 것이다.

이번 콘클라베에 28명이 참석한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가 관심거리다. 이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 이전까지 455년간 교황직을 독식해 왔다.

또 다른 세력으로는 미국인 추기경들을 필두로 한 개혁파다. 개혁세력은 바티칸을 뒤흔들 개혁적 성향의 교황만이 기밀문서 유출 파문과 내부 권력투쟁 의혹, 성추문 등으로 추락한 위신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신문 ‘가제타 델 수드’는 북미 출신 추기경들이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에 모였던 추기경단 회의 기간 중 브라질 추기경들과 비밀 회동을 갖고 연대 구축을 위한 논의를 벌였다고 비공식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개혁세력은 교황청 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유럽 추기경들이 내세울 후보에 맞서 자신들의 적임자를 찾고 있다. 이들이 아프리카 세력도 끌어들이려 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인 추기경은 11명으로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 세력을 차지하고 있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레가 바티칸 전문가 8명을 상대로 선호하는 교황 후보를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의 숀 패트릭 오말리(68) 추기경(미국 보스턴 대교구장)이 1위로 뽑혔다. 외신들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던 스콜라 추기경과 스체레르 추기경을 제쳤다는 점에서 이번 설문을 놀라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이번 콘클라베에서 무시하지 못할 또 다른 진영으로 ‘베네딕토 16세파’를 지목했다. 베네딕토 16세 재임 기간에 추기경으로 임명된 67명의 추기경이 이번 콘클라베에 선거인으로 참가했다. 이는 전체 선거인단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 지난 6일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에서 마크 웰레 캐나다 추기경(가운데 왼쪽)과 안젤로 스콜라 이탈리아 추기경이 다른 추기경과 함께 교황 선출 준비를 위한 저녁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출처: 뉴시스)

◆콘클라베 철통 ‘보안’… 바깥세상과 단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는 말 그대로 철통보안 속에 진행된다. 교황선출 절차의 제1원칙은 바깥세상과의 완벽한 ‘단절’이다. 추기경 115명이 참석한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은 투표에 앞서 철저한 도청장비 검사를 실시했다. 성당 실내 습도를 관리하는 장비마저 제거할 정도로 보안이 최우선 과제다. 이 밖에 회합 장소의 카펫을 치우고 전구나 수도관, 전선 등을 세밀히 검사했다.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가 시작되면 예배당 내부에는 그 어떤 통신기기도 허락되지 않는다. 추기경단과 교황청 내 모든 직원은 투표 개시에 앞서 비밀 엄수와 외부 개입 배제를 맹세한다. 추기경들은 모든 휴대 통신기기를 반납해야 하며, 말 그대로 바깥세상과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다. 이를 어길 경우 교회로부터 파문을 감수해야 한다.

이 같은 비밀 전통은 과거 교황 선출 과정에서 로마의 귀족과 같은 외부 세력의 입김을 원천 차단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하면서 한층 강화됐다.

반면 보안 유지를 위해 고수하는 ‘불변’의 전통도 있다. 콘클라베 기간 허용되는 언어는 라틴어가 유일하다. 모든 투표 절차는 펜과 종이로 이뤄진다. 추기경들이 사용하는 숙박시설은 ‘호텔급’이지만 편안한 휴식 외에는 TV 등 그 어떤 매체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 콘클라베가 지난 100년 동안 5일 이상 지속한 적이 없다. 차기 교황은 다음 주말께 선출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새 교황을 보기 위해 최소 20∼3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릴 새 교황의 취임 미사는 일요일인 오는 17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로마시의 마리오 발로로시는 “군중이 얼마나 모일지는 바티칸도 모른다. 누가 교황이 될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앞서 베네딕토 16세의 마지막 공식 행사에는 15만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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