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락(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한 정치가가 어떻게 하느냐에 의하여 국민의 삶이 굉장히 달라지는 걸 보면서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이념이나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위하여 계속 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당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나라’라든가 ‘새누리’라는 이름은 무슨 목적을 추구하는지 쉽게 알기 어려운 이름이다. ‘통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당 이름도 비빔밥이 떠오르는가 하면 그 말을 갖다 붙이면서 통합할 때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당에 대하여 ‘누구의 당’이라는 비판을 하기 전에 정말 민주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착실하고 소신 있게 차근차근 정치에 몸담아온 대통령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 외의 새로운 인물에게 손을 길게 내뻗고, 또 그쪽에서 당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 참견을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따라야 하고, 왜 그런 당이 돼야 했나? 너무 한심하고 불쌍해 보인다. 지금 국회에는 줏대가 없는 당들로 구성돼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참에 이름 그대로 ‘서민당’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서민 출신들, 대한민국과 서민을 위한 일에만 전념해 온 분들, 앞으로도 그렇게 생을 마감할 분들로 구성된 당. 부자들과 잘 사는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아도 살아가는 재주가 있다. 많이 가진 사람과 힘센 사람이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돕는 것이 쉽지, 반대로 하기란 어렵고 힘들다. 정치야말로 가장 큰 힘이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부터 돕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 가장 큰 의무라고 본다.

‘서민당’은 부자들과 대기업이 외화벌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돕는 데 보람을 느끼고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들이 경제 원론에만 잡혀서 이윤추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상생하는 데 기여하는 기업사고로 전환시켜 주고 그렇게 유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 인터넷으로 기업을 들여다 볼 때 ‘per’같은 식으로 기업순익 대비 직원 수를 나타내는 비율표, 기업운영비 중 인건비 비중, 순익 대비 불우 국민을 도운 금액 비중 등도 표시하도록 하고, 사원들과 사회 환원을 위하여 어떤 일들을 했는지도 기업분석란과 함께 회원가입 하지 않고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자연환경을 위하여 힘쓰는 당, 안보와 외교에 중점을 두는 당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과 같은 정당 정치라면 굳이 정당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당 없이 충분한 민의 반영을 위하여 군 단위까지 국회의원을 한 명씩 두고 비례대표는 없애고 대신 분과 위원회별로 학계와 사회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함께 논의하는 가운데 좋은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면 좋겠다. 이렇게 하다 보면 훌륭한 정치가들이 나타나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과 국민들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면서 대선도 치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도지사나 시장, 군수도 정당소속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당정치든 아니든 대선 출마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출마 선언하기 전까지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고, 일단 출마선언을 한 후부터는 대통령 후보의 뜻과 의지를 굽히지 말고 끝까지 가야 경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 되기에 준비가 덜 된 후보자나 대통령 자격 2등 3등의 후보들이 1등 자격의 후보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단합하는 행위는 정치를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가장 나쁜 행위라고 본다. 처음부터 후보단일화의 뜻을 가지고 출발한다든지 중도에 후보사퇴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이 공약했던 사업이 다 옳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추진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반드시 전문가들의 종합적인 타당성을 검증 받아서 추진하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커다란 짐을 안겨주게 된다. 4대강을 운하로 연결하려고 했었는데, 태백준령에 위에서부터 물이 계속 공급되리란 보장도 없고, 앞으로 건축에 필요한 모래는 누가 만들어줄까? 큰 사업일수록 결과를 다방면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지 문제에 있어서 행정구역별 경제 사정에 따라 받는 국민의 혜택이 차이가 나지 않도록 지방재정에 일임하기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강원도의 아이와 서울의 아이가 받는 혜택이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원하는 곳에 태어날 수 있다면 누가 혜택이 낮은 곳에 태어나고 싶겠는가?

하우스푸어 이야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집이 없어 마음과 삶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진정한 하우스푸어라고 본다. 그들부터 도와주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경제활동을 시작하여 쌓아 올린 연륜에 비하여 집과 관련된 빚이 과다하다면 그 사람은 투자나 투기목적으로 빚을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런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부터 먼저 한다면 형평성에도 안 맞고, 집 없는 사람들에겐 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투자나 투기는 실패도 감수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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