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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터’서 목숨 잃은
천주교 신자만 백여명
밝혀진 이름은 20여명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땅 기우는 고문도/ 시원한 바람일 수 있는 것입니까/ 하늘은 맑고 햇살은 곱습니다/ 나는 침묵 투명한 땅에서/ 캄캄히 나의 삶 들여다봅니다/ 캄캄히 나의 죽음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직도 고통이 모자라/ 피 맑지 못한 기도는/ 여전히 구름 뚫지 못하는데 / 진정 나의 사랑은 어느 높이에서/ 잠을 깨고 있는 것입니까/ 멀리 지평선 이루는 숨결/ 아득히 약속 밝히는 기억/ 부질없이 떠돌았던 나의 젊음도/ 이제는 밝은 파문 일으키는/ 작은 죽음 하나 꿈꿀 때 되었습니다” -김영수의 ‘아직도 고통이 모자라(죽산 이진터에서)’-

코를 찡긋하게 하는 고향의 냄새와 “음메. 음메” 하는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죽산성지 입구다. 죽산성지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성지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위의 환경과 어우러져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처럼 아름다운 성지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나뉘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조선 시대 지방 행정기관인 도호부가 설치됐던 곳이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군이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격하기 위해 오랑캐가 진을 쳤던 곳이라 해서 ‘이진터’라고 불렸다. 이후 병인박해(1966년)를 지나면서 현재의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많은 천주교인이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처형됐다. 그 뒤로 ‘누군가가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고 해서 ‘잊은 터’로 불렸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천주교에 따르면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순교했으나 이름이 밝혀진 인원은 25명에 불과하다.

▲ ‘십자가의 길’로 이어진 계단. ⓒ천지일보(뉴스천지)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죽산행 버스를 타고 죽산성지로 향했다. “이번역은 죽산입니다…”라는 안내멘트를 듣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린 곳은 죽산 시외버스 터미널인데 이곳은 서울과는 도시적인 이미지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놀라웠다. 이곳에서 37번 버스를 타고 광장휴게소에 내리면 ‘죽산성지’라고 쓰여 있는 큰 바위를 볼 수 있는데 바위 옆길로 15분 정도 걸으면 목장이 나온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는데 이곳은 수원교구의 영성 수련원이다.

 

이윽고 다다른 죽산성지 입구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의 씨앗’이라고 적힌 비석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비석을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크게 돌면 사찰에나 있을법한 일주문이 나온다. 하지만 화려한 사찰의 일주문과는 다르게 모습에서부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역(聖域)’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달린 일주문은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문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성역이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성지 안으로 들어서자 금빛 잔디가 방문객을 반겼다. 초겨울의 잔디는 쓸쓸함보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일주문으로부터 정면에 있는 순교자들의 묘와 제대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길이 이어져 있었다. 무명의 순교자 묘를 중심으로 ‘병인박해 치명일기’ ‘증언록’에 기록돼 있는 25명의 순교자 묘가 양쪽에 나란히 배치돼있다. 이 묘들의 주인은 김도민고, 여기중, 이희서, 홍천여, 한치수, 문막달레나, 정덕구, 방데레사 등이다.

특히 한 날, 같은 장소에서 가족이 처형된 경우가 있었는데 1867년 처형된 여정문 일가(부인, 아들), 1868년의 조치경, 김우보로시나 부부와 최성첨과 최성첨의 아들이 그렇다. 조선의 국법상 가족을 처형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었음에도 여러 차례 자행됐다. 이를 보아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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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묵주알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기도해
제대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으로 무릎높이의 삼각기둥이 커다란 묵주알을 받치고 있는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삼각기둥은 천주교에서 성체를 모실 때의 손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 성부・성자・성령이 하나라 삼위일체의 뜻도 가지고 있다. 여름이 되면 묵주알 위로 둘러싸여 있는 장미넝쿨이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장미터널과 연결된 곳으로 신자들이 묵주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면서 기도를 하는 곳이다.

 

죽산성지는 100여 종이 넘는 수목과 꽃들로 가득하다. 또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선 ‘꽃이 지지 않는 성지’로도 유명하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부활대축일쯤에는 조팝나무 꽃이 펴 성지를 하얀 꽃밭으로 만든다. 여름에는 장미 넝쿨이 반기며 가을에는 코스모스, 들국화가 핀다. 겨울에는 푸른 사철나무가 지조 있는 선비처럼 성지를 지킨다.

묘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나무로 된 계단이 옆에 나무와 어우러져 있는 ‘십자가의 길’로 이어진 계단이 나온다. 이 길에 가운데는 순교자들의 영을 달래듯이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상이 나온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예수와 이름 없이 사라진 순교자들을 조용히 묵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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