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9일 양철모 작가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예술을 통해 시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다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최근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우리 가슴을 울렸다. 소아암 어린이들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희망을 전하고자 마련된 ‘제4회 소아암 어린이 사진전-다시 오는 봄’전시회가 그것이다. 전시엔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또 사진 속에선 투병 중인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에서 촬영됐다. 전시는 관객과 작품이 소통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는데 이는 촬영작가 양철모(36) 작가의 철학이기도 하다.

포장하지 않은 현실의 소리를 사진으로 담아 감동 그 이상을 선사해 온 양철모 사진작가의 뷰파인더로 들어가 보자.

◆‘다시 돌아오는 봄을 위해’

올해로 제4회째를 맞은 소아암 어린이 사진전은 ‘다시 돌아오는 봄’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7일부터 13일까지 경인미술관 제6전시관에서 진행됐다.

(재)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주최하고 양철모 작가가 촬영한 이번 전시에는 10명의 어린이가 모델로 나섰다.

모두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이지만 사진 속에선 너무나 평온하고 순수하게 미소 짓고 있어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양 작가는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품 등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촬영하며 아이들의 마음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낯선 아저씨를 보고 아이들이 불편해할 것을 고려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작품에 임하게 한 것이다.

양 작가는 “소아암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 속에서 소아암에 대해 가졌던 아프고 힘든 이미지가 밝고 희망 가득한 이미지로 변화되기를 바란다”며 이번 전시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나무가 자라기 위해선 햇빛과 물 등 이 필요하듯이 아이의 건강을 위해선 무엇보다 돌보는 가족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에서 자연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재)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8년 전 제1회 소아암 어린이 사진전을 주최했다. 양 작가는 1회 때부터 기획 및 참여 작가로 활동해왔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집에 찾아가 아이의 일상도 지켜보고 대화도 나눠 보면서 작품이자 모델이 된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데 노력해왔다는 양 작가. 그는 소통의 시간을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과의 사진촬영에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와 모델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심’과 ‘진실’을 담고자 했기에 양 작가는 시간을 들여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양 작가가 담아낸 ‘진심’과 ‘진실’이 결국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자센터’에서 7여 년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쳐온 양 작가는 단순히 사진이론을 가르치기보다는 포토저널리즘을 일깨워주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덩치는 크지만 조금 소심한 학생 한 명이 대화 도중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자신이 어린시절 백혈병을 앓으면서 성장해 성격이 소심해졌지만 가슴 안에는 뜨거운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어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소아암 완치율은 80%에 이른다. 제때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이 완치할 수 있는 병이지만 치료를 받는 환자나 돌보는 가족 그리고 사회의 시선은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양 작가가 ‘하자센터’에서 만난 그 학생도 소아암을 이겨내고 가슴에 뜨거운 덩어리를 키웠다. 투병 중인 자신과는 달리 열심히 꿈을 키워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키워낸 그 불덩이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양 작가는 그 고백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학생은 재단에 취업해 문화사업을 담당했고 소아암 사진전을 추진하는 중 양 작가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양 작가는 이렇게 시작된 소아암 재단과의 인연은 8년째 이어가고 있다.

◆“예술을 통해 일상의 데이터베이스를 전달하는 거죠”

양 작가는 사진을 중심으로 설치미술 등 다방면의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학에서 사진과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믹스라이스(Mixrice)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이주노동자 인권향상과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그룹으로 공동체를 위한 예술 활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며 작품 활동 중인 양 작가는 거창하고 화려한 사명의식에 갇혀 있기보단 일상과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예술로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소아암 사진전도 양 작가의 활동에 비슷한 노선을 타고 흐르고 있다. 80%의 완치율을 보이는 소아암은 아프지만 희망이 있는 병이다. 이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환자와 가족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양 작가는 이를 왜곡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제가 찍은 사진이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생각은 안 해요. 단지 장시간 사진을 통해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담아주고 훗날 데이터베이스가 돼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이주노동자 문제도 마찬가지고, 여러 사회문제도 이렇게 담아내고 싶어요.”

단순히 퍼포먼스에서 벗어난 예술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데이터베스로 다가갈 수 있음을 양 작가는 몸소 실천하며 오늘도 뷰파인더 속 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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