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은퇴연구소 전기보 소장은 열정을 의미하는 빨간색을 좋아해 평소에도 빨간 구두·시계·자동차를 애용한다. 사진은 빨간 구두를 들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행복한 은퇴, 돈으로 설계할 수 없어”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고 준비해나가는 사람이 10억 가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퇴직자 및 퇴직 예정자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이 더 나은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친절한 빨간 구두 아저씨’가 있으니 바로 행복한 은퇴연구소 전기보 소장이다.

전 소장도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격인 58년생 중 한 명이다. 자동차와 시계는 물론 구두까지 빨간색으로 ‘깔맞춤’한 그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은퇴 설계를 도우며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지만 그도 몇 년 전 이러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조직에서 ‘아웃’당하는 아픔을 경험했다.

“한번 매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은퇴’로 정의한다면 제 상황은 자발적인 은퇴보다 강제적인 게 더 많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시기가 빨랐을 뿐이지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밟아야 할 절차였죠.”

그는 당시 기업의 임원이었다. 남보다 비교적 젊은 49세에 은퇴를 하게 됐고 그러면서 가장 먼저 든 마음은 적개심이었다. 전 소장은 “20년 이상 다녔던 첫 직장인만큼 회사를 나오면서 배신감이 컸던 것 같다”면서 “‘나를 (회사에서) 내보낸 사람은 누굴까,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에서부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마음은 차츰 사라졌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감정도 추슬렀다.

이후 전 소장은 전&김 웰스펌 대표를 거쳐 현재 행복한 은퇴연구소 소장과 열린사이버대학에서 교수로 활발히 일하고 있다.

그가 ‘은퇴’라는 것을 생각하고 준비한 것은 사실 40대 초중반부터였다. 전 소장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다닐 때 자산을 관리해주는 국제공인 재무설계사(CFP) 자격을 땄는데 그중 한 테마가 ‘은퇴’였다”면서 “다른 사람에 비해 일찍 자격을 땄고 기업 임원으로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특이한 케이스였다”고 말했다.

국제공인 재무설계사(CFP)는 당시 시작 단계라 강사가 부족했던 터.

이에 전 소장은 자격을 딴 후 강사로 일하게 됐고 그때 맡은 과목이 ‘은퇴’에 관한 것이었다. 이 교재에서 말하는 은퇴 설계는 철저히 재무적인 요소의 준비방식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비재무적인 것을 행복한 은퇴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재무적인 것에 있어서도 행복한 은퇴를 위해서 막연하게 돈을 무조건 10억 원 모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어갈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면 된다는 게 전 소장의 말이다. 은퇴 준비에 있어서 자금은 맨 나중에 생각할 단계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가 은퇴에 있어 이같이 방향을 틀게 된 것은 미국 CFP 관련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나서부터였다.

전 소장은 “나는 여태까지 은퇴에 있어서 재무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CFP들은 행복한 은퇴의 기준이 비재무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면서 “굉장히 논리적이고 수학적일 것 같던 서양 사람들 입에서 이러한 철학적인 얘기가 나와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돈보다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할 건지가 더 중요하다는 한 강연자의 말은 전 소장에게도 크게 와 닿았다.

이후 전 소장은 은퇴에 대해서 이전과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동안 해온 세미나 내용을 전면 수정했다. 강연자가 변하니 경청자의 반응도 달라졌다.

“은퇴설계를 하면서 돈이 아닌 다른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신선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자산관리하는 회사를 운영했으나 자기와 비슷한 시기에 놓인 사람들, 또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 사람들과 ‘은퇴’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어 지금의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그는 특히 베이비 붐 세대가 자신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며 아쉬워했다. 전 소장은 “우리 세대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다. 우리 부모님들은 더 어렵게 살고 공부도 못했다. 그래서 부모가 우리에게 조금만 더 잘해주면 우리가 더 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다”면서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자녀에게 너무 올인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자식은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없다. 이에 제2의 삶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 소장의 말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 절대로 더 나은 미래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과거에 연연하거나 현재에만 투자해서 미래에 어떤 성과를 못 내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자기계발에도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2의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 계획 없이 이것저것 하는 사람은 속력이 아닌 속도만 내는 사람이요, 속도만 내서는 목적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고.

가령 최근까지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너도나도 따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제2의 삶을 살거나 소득을 올리며 사는 사람은 소수다. 자격증을 따놓으면 써먹을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밖에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막연히 동경해온 삶에 퇴직금을 다 쏟아 부었다가 생활이 어려워지는 사람도 있다.

전 소장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공익성 등을 골고루 따져 제2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퇴 후에는 아마추어 활동 등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행복과 불행은 자존감의 문제다. 자존감은 참 특이하게도 남과의 비교에서 이뤄진다”면서 “은퇴 이후 관계 형성도 안하고 혼자 생활하다 보면 내가 과거에 비해 너무 쓸모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될 텐데 이는 위험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 사람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에도 너무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많지만 길게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취직도 하기 어렵다고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고요. 이렇듯 경력관리는 물론 당장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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