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소방본부 안종석 방호구조과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일하면서 배우는 희생과 봉사정신․주인의식
생명 구해줬을 때 ‘고맙다’는 한마디에 보람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내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이 일을 하기 어렵죠. 현장에선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오직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 속이나 물 속, 산사태 등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받는 곳에 곧바로 뛰어들게 됩니다. 화재 현장에선 불을 빨리 끄고 불 속에 있는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지요.”

최근 가뭄에 이어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피해 복구로 한층 더 바빠진 세종소방본부 안종석 방호구조과장의 말이다. 인터뷰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며 피하는 그를 세 번이나 설득해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루하루 365일, 28년 동안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 속에서 ‘밤 12시 이후 비상전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늘 긴장하며 살아온 그에게 기자가 ‘직업 선택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없었는가’란 질문을 했다.

“화재 현장에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지휘관이 될 때가 많아요. 무너진 건물 안 불 속에 사방이 막혀 혼자서 갇히기도 하고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 움직여야 하지요. 저도 대전에 있는 가방공장 간이 2층에서 바닥이 갑자기 푹 꺼지는 바람에 갇혀버린 때가 있었는데 소방호스를 타고 내려와 가까스로 살았어요. 하지만 아직 직업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이같이 답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젊었을 땐 대부분 직업으로 선택해 오게 되지만 여기 와서 일하면서 희생과 봉사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일을 하고 현장 상황에 부딪히면서 그런 마음이 더 굳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소방대원은 해마다 5~10% 내외의 이직률이 있긴 합니다.”

그는 또 소방대원의 직업병 가운데 ‘우울증’에 대한 아픈 추억을 어렵게 꺼내 놓았다.

“가장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던 일은 함께 일하던 논산의 한 여직원이 자살했을 때였어요. ‘한 달 후에 뵐게요’라고 하면서 병가를 낸 그 여직원은 지인이 불 속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후 1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요.” 이같이 말하는 그의 눈은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젖은 채로 있었고 목소리도 반쯤 잠겨 있었다.

그는 “소방대원의 우울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으로 말미암은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상담과 전문가 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된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특히 소방대원은 직업의 특성상 자연재해나 각종 사고 등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는 직업이므로 업무로 말미암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높다.

소방공무원 중 39.7%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설문 결과가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6월 소방방재청에서 전국 소방관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는지를 점검했는데 조사 대상 중 5%에 해당하는 1452명이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하는 수준인 것으로 지난해 말 발표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안 과장은 운동으로 자신을 이겨내고 있다. 그는 주로 조깅과 등산을 하는데 이젠 몸에 밴 습관이 돼서 비나 눈이 올 때도 뛰면서 오히려 시원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운동으로 근육이 생기면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면서 “운동을 지속해서 하면 기운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죠. 운동하다가 쉬면 다른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소방본부 간부의 책임과 자신과의 싸움에 대해 “교육보다 자신이 스스로 조직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하 직원을 통솔하려면 자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변화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세종시 연기면 수산(水山)리가 고향이라는 안종석 과장은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립심이 강한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왔다.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재미있었던 일은 복숭아와 참외, 수박 서리였다. “괜히 영웅심리에 ‘네가 할래? 내가 할까?’ 하면서 한번 씩 서리를 했지요. 이웃 어르신들은 서리하다 걸리면 다 자식 친구들이니 혼만 좀 내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아직 익지 않아 먹을 만하지 않은 것을 서리했을 때였다.

그에겐 흥미로운 긴장감과 함께 훈훈한 고향의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의 어렸을 때 꿈은 법관이었지만 군대 생활을 하던 중 소방대원들이 활기차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소방업무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 안 과장은 해양경찰로서 순찰 경비정을 타고 동해, 남해, 서해와 울릉도, 독도 등에 순환 근무를 설 때였다.

“당시 바닷가 곳곳에 소방서가 있었고 소방대원들이 모래사장에서 족구와 배구를 하는 모습에서 화합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이 느껴졌고 아직도 그 장면이 가슴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특별히 바다를 좋아하는 그는 요즘도 시간만 나면 바다에 가서 군대에서 배운 바다낚시를 하며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다듬곤 한다. 그는 드넓은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지난 7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소방본부도 함께 출범했다. 세종소방본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는 소방본부다. 현재 충남도에 13개, 대전시에 5개의 소방서가 있는 데 비해 세종소방본부는 광역업무와 지역 업무를 겸해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적은 인원으로 세종시 소방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세종소방본부는 밤 10시가 넘어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는다. 평일에 일을 다 못 마친 직원은 주말에도 자율적으로 나와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는 “월급을 받기 위해 이 일을 한다면 하기 어렵다”면서 “이곳 상황에 적응하려면 스스로 알아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본부에서 하는 일은 주로 화재진압과 구조, 구급으로 크게 나뉘는데 ‘응급처치’는 기본이며 이외에도 기관이나 단체 출장 교육과 방문인 교육, 행사에서 ‘심폐소생술’ 등도 가르치기도 한다. 현재 부족한 인원은 애향심과 봉사정신으로 뭉친 민간조직 580명의 보조 인력으로 보충하고 있다.

안종석 과장은 ‘2007년 태안 유류사고’ 현장을 처음 목격하고 서산소방서 방호과장으로서 피해 복구에 온몸을 바치기도 했다. 이후 두 달간 추위와 기름 냄새로 걸린 축농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가끔 그곳에 가보면 청정함을 회복한 경치를 바라보며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이야기하는 중간마다 그의 멋쩍은 웃음은 크고 작은 수많은 고난을 겪고 이겨낸 후에 얻은 평범함의 아름다움과 겸손함으로 다가왔다.

그는 “소방업무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라고 기자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해줬을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인데 그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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