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규 변호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려운 사람 돕는 단체 자문위원·감사·소장 맡아
내가 받은 도움, 남에게 전하는 ‘전염 봉사’ 추구
“주말 휴식 없지만… ‘책임감’보다 ‘즐거움’으로”

[천지일보=이솜 기자] 그의 명함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놀란다. 그리고 이 한마디를 꼭 하게 된다. “이게 다 현직이에요?” 이어 그의 약 십여 개의 경력 중에 ‘돈을 받고’ 하는 일은 2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지난달 30일 이 명함의 주인공인 조상규 변호사를 만나 왜 계속 ‘무보수’ 경력을 쌓고 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현직은 약 십여 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법무위원이자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고문변호사가 그가 유일하게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 조 변호사가 하는 일은 대부분 무보수거나 자그마한 성의를 받는 정도다. 소개를 하자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법적 상담’이 주 업무다.

첫 시작은 지난해 서울맹학교 고문변호사가 되면서부터다. 애초 그는 서울맹학교에 갈 생각은 없었다. “사실 나도 소위 ‘부자 학교’ 고문변호사가 돼서 인맥도 쌓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리어를 가지고 싶었죠.” 그의 고백이다.

그러나 그 ‘부자 학교’에서는 조 변호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가 다시 선택한 곳이 바로 맹학교였다. 조 변호사는 “당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었다”라고 회상했다.

맹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한 조 변호사는 사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은 조 변호사의 능력을 원했고, 조 변호사 역시 싫지 않았다. 그렇게 봉사단체의 자문위원, 설립준비위원, 감사, 소장 등 모두 수락하다 보니 이렇게 하는 일이 많아졌다.

조 변호사가 이렇게 남을 돕는 데 익숙한 것은 집안 환경도 한몫을 했다. 조 변호사는 어머니가 노숙인들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또한 조 변호사 가족의 생일에는 돈을 모아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 생일을 맞은 가족 구성원의 이름으로 기부도 해 왔다.

조 변호사의 가치관을 통해서도 그가 왜 ‘무보수’ 법률 상담을 웃으면서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내 인생의 신조 중 하나가 ‘나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서운하게 하지 않는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체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뜻이고, 사람이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사실 주말이 없다. 모든 활동을 소화해내려면 어쩔 수 없다. 조 변호사는 “시간을 나눠 쓰고 아껴 쓰면 누구나 가능한 일인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주말에 쉬지는 못하지만 그저 놀고먹기보다는 남을 돕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최근 서울 꽃동네 채움법률상담소 소장이 됐다. 변호사가 노숙인들을 위한 전문 법률 기관의 소장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조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의아하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을 위한 법적인 상담은 당연히 법조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왜 이제껏 그런 사람이 없었느냐는 것이다. 그는 또 이와 관련, 법조인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나처럼 공익법무관을 거쳤거나 서민층 대상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변호사가 아닌 소위 ‘노블레스’급이 주 고객인 변호사들은 왜 노숙인들에게 상담을 해줘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노숙인들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라며 “채권관계나 친인척관계 등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아가 상담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법조인과의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담 자체를 원하는 노숙인들도 많다”며 “이들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한다. 나랑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닥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정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상담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절반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에는 한국자원봉사협의회 나눔과봉사 회원으로 활동을 했다. 그는 보육원 청소년들을 만나 멘토가 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조 변호사는 이후의 다른 봉사 일정은 모두 펑크를 냈다. 보육원 아이들과 몰래 나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문자가 왔는데 나중에 ‘잘못 보냈네요’라고 다시 보내는 거다. 나한테 문자하나 보내는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사랑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사랑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보통 친구들처럼 대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함께 물놀이도 하고 밥도 먹었다. 아이들과 정말 친해져서 카카오톡도 한다. 다음번엔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제일 신났을지도 모른다. 하하.”

조 변호사는 이처럼 인터뷰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사실 ‘책임감’에 즐겁게 일을 못했다고 한다.

조 변호사는 “원래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중요시했다”라며 “그러나 요즘 여러 활동을 하면서 모든 것이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하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많은 일이 모두 즐겁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명확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회계설계사를 대상으로 법률상담을 하고 있는 조 변호사는 박사 학위에 경영학 석사, 교수 직함까지 가지고 있어 동기 중에서도 특별한 경력을 자랑한다. 그는 여기까지 자신이 올 수 있었던 것과 이를 이용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이유로 ‘전염’이라는 단어를 꼽았다.

조 변호사는 “나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신 분에게 아직 빚을 갚지 않았다”며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비가 부족한 학생에게 나를 지원해 주신 분의 이름으로 학비를 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의 이름으로 맹학교에 에어컨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전염 봉사’의 방식이다. 조 변호사는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기증·기부를 하기 위해 사업도 구상 중이다.

조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에 변호사를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함께합시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한 번 하게 되면 또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단 저와 함께 ‘도움의 기쁨’을 느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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