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태권도 사범교육을 받기 위해 방한한 조안나 쎄퀠리아 씨가 국기원 경기장 내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태권도 통해 꿈 찾은 조안나 쎄퀠리아 선수

日‘ 가라테’엔 없고, 韓‘ 태권도’엔 있는‘ 따뜻한 정’
라마코카 원광센터서 태권도에 눈 떠 선수로 활약

학비 지원받고 남아공 유일 체육 전문학교서 훈련
7년 전부터 사범·봉사자·후원자 뭉쳐 양성된 인재

[천지일보=최유라 기자] “제 꿈은 남아공에 있는 어린 친구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고, 그 아이들을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태권도 사범이 되고 싶어서 교육을 받으러 한국에 왔어요.”

2012 런던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여기저기서 모국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런던을 찾는 가운데, 특별히 태권도 사범교육을 받으러 한국 땅을 밟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출신 태권도 선수 조안나 쎄퀠리아(21, 여) 씨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태권도 진흥기관 ‘국기원’에서 태권도 사범교육을 받기 위해 방한한 조안나 씨를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다부지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조안나 씨는 태권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가 남에게 보여줄 만한 이력 중 태권도 외엔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다. 그렇다고 이력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비해 꽤 굵직한 경험이 포함돼 있다.

조안나 씨는 남아공 유일 체육중‧고등학교인 ‘프리토리아대학 부설 스포츠아카데미’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태권도 과정을 제1기로 이수한 졸업생이다. 지난 2007년 스포츠아카데미가 태권도 과정을 개설함에 따라 당시 14살이었던 조안나 씨는 본격적으로 태권도에 입문했다.

특히 이곳에는 한국의 태릉선수촌과 같이, 국가대표 선수를 양성하는 ‘하이퍼포먼스센터(HPC)’가 갖춰져 있다. 조안나 씨는 이곳에서 태권도 선수의 꿈을 키웠다.

같은 해 조안나 씨는 ‘남부 아프리카 태권도 경기(레소토)’에 출전해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며 태권도 선수가 지녀야 할 자질을 다졌다.

또한 그는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도 대회 출전을 위해 방문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제5회 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에서 남아공 출신 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이렇듯 앞으로의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임에도 올해 런던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을 마다한 이유가 궁금했다. 질문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뜻밖의 대답을 전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픈 어머니와 언니만 계세요. 태권도 선수로도 뛰고 싶지만, 저는 사범이 돼서 돈을 더 벌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어린이를 정말 좋아해요. 빨리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그의 각오가 느껴졌다.

▲ 지난달 31일 태권도 사범교육을 받기 위해 방한한 조안나 쎄퀠리아 씨가 국기원에서 품새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태권도가 아니었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조안나 씨는 단연코 “태권도는 제 인생 수준을 확실히 향상시켜줬다”고 고백했다.

남아공에는 태권도 문화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태권도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일본의 ‘가라테’가 1960년대쯤 소개됐지만, 태권도는 1980~1990년대에 소개됐음에도 훨씬 반응이 좋다고 한다. 조안나 씨는 태권도와 가라테를 이렇게 비교했다.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돼 있죠. 남아공에는 태권도 같은 스포츠가 없어요. 가라테와 다르게 태권도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커뮤니티를 형성시켜줘요. 만약 태권도를 몰랐다면 전 계속 집에만 처박혀 있었을 거예요.”

한때 가난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비전조차 찾기 어려웠던 조안나 씨가 이렇게 태권도 사범의 꿈을 갖게 된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조안나 씨에게 태권도를 지도한 조정현(42, 남) 사범과 라마코카 원광센터에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는 사단법인 ‘아프리카 어린이 돕는 모임’ 조정제(74, 남) 이사장도 함께했다.

먼저는 조안나 씨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곁에서 코치해준 조 사범의 지도가 컸다. 조 사범은 원래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남아공으로 파견됐었다가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특수법인 ‘국기원’에 소속돼 남아공에 파견돼 있다.

조 사범은 처음 남아공으로 파견됐을 당시 “참 난감했다”고 표현했다. 태권도를 알릴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던 조 사범은 당시 10여 년 넘게 남아공 라마코카 현지인을 위해 봉사를 하던 라마코카 원광센터 김혜심(68, 여) 교무를 찾아갔다.

김 교무는 선뜻 태권도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허락해 줬다고 한다. 이후 원광센터에는 사물놀이, 컴퓨터, 유치원 등의 다양한 문화생활 외에 태권도 항목도 추가됐다. 조안나 씨는 바로 이 원광센터에서 태권도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조 이사장은 조안나 씨가 스포츠아카데미에 다니기 전까지 아낌없이 학비를 지원해주는 데 한몫 했다. 그는 “조안나 씨는 우리 라마코카 원광센터가 추구하는 인재양성의 롤 모델”이라며 “앞으로 조안나 씨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전했다.

조 사범은 조안나 씨를 향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말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친구”라며 “만약 태권도를 알지 못했으면 지금의 조안나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조 사범은 “지금의 조안나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제자인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사범의 길을 택한 대단한 친구”라며 극찬했다.

이제 조안나 씨는 어린 태권도 소녀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다. 그가 올해 태권도 사범이 되면 남아공 최초 최연소 여자 사범이 된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를 보면, 앞으로 조안나 씨를 통해 희망의 빛을 발견할 많은 남아공 후배 선수들이 눈에 선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태권도를 통해 알게 된 한국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됐고, 꿈도 갖게 됐어요.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는 한국 문화도 많이 배울 생각입니다.”

▲ 태권도 사범교육을 받기 위해 방한한 조안나 쎄퀠리아 씨가 국기원 건물 앞에서 자신의 사범인 조정현 씨(왼쪽)와 학비지원을 도운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운동’ 조정제 이사장(오른쪽)과 함께 지난달 31일 한자리에 모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