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0일 공무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성북구 정릉 3동에서 연탄배달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에 정치논리 개입 → 기본정신 훼손
사퇴 당한 전임 센터장 “외부 압력 있었다”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자원봉사단체는 기본적으로 비영리·비정치 민간단체를 표방한다. 자원봉사의 근간을 설명하고 있는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제2조는 “자원봉사활동은 무보수성·자발성·공익성·비영리성·비정파성·비종파성의 원칙 아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조는 “자원봉사단체 및 자원봉사센터는 그 명의 또는 그 대표의 명의로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 자원봉사단체의 탈정치화를 선언하고 있다.

더욱이 자원봉사 자체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이나 공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활동’을 지향하기 때문에 여기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그 기본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공공연히 자원봉사단체에 정치권의 손길이 미치는 것은 바로 ‘표’ 때문이다. 기초단체 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서 표 몰이를 원하는 정치권의 표적물이 되기 쉽다.

이와 더불어 지역의 조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통상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기초단체 자원봉사센터장에 대해 지방별정직 공무원 5급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도록 하면서 ‘보은 인사’ 또는 ‘낙하산 인사’의 장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자원봉사계에 따르면 지방선거가 끝난 뒤 자원봉사센터장 70~80%가 바뀌어왔다. 이번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사례 또한 동일한 프레임 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전임 센터장 “스스로 나온 것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원봉사센터는 독립된 법인이지만, 관계법과 시행령에 따라 기초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확인 결과 대부분 기초단체 자원봉사센터장의 계약에 따른 연봉은 6000여만 원이고 성과급까지 합하면 7000만 원 선이었다. 서울시의 경우도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장은 다른 시도보다 높은 3급(국장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이처럼 관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이 쏟아지다 보니 지자체가 자원봉사센터에 ‘훈수’를 둘 여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센터장 임기는 지방 조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보통은 2~3년이며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장의 임기는 2년이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임기가 너무 짧아서 센터장이 전문성을 키우지 못하고, 정치인들이 ‘코드 인사’를 하는 데 많이 이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의 경우 센터장을 뽑을 때 공개모집을 통해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자를 추리고, 최종 1인을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센터 이사진 및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채용심사위원회의 심의, 이사회의 의결, 시장의 승인, 이사장의 임명을 거치게 된다.

한편 지난해 2월 1일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는 4번의 공개모집 끝에 새로운 센터장을 맞이했다. 그러다가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따른 역풍을 맞고 시장직을 내려놓은 후 보궐선거를 통해 지난해 10월 신임 박원순 시장이 취임을 하면서 “시장이 바뀌었으니 센터 내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 었다.

그리고 소문은 현실로 이뤄졌다. 장미승 센터장(50)이 임기를 채 1년도 못 채운 지난 1월 중순께 사퇴를 한 것이다. 이후 장 전 센터장의 사퇴 에 서울시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급기야 일부 자원봉사단체 대표들이 “독립법인에 속해 있는 자원봉사센터장 임기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며 해명을 요구했지만, 서울시 측은 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사퇴에 대한 서울시 측의 개입 의혹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이 사건 당사자 및 관계자들은 서울시가 장 전 센터장의 사퇴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입을 모았다.

장 전 센터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미 끝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서도 “서울시 정무라인에서 구두로 (사퇴) 통보가 왔고, 내가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신임 센터장 채용 의결에 관여하는 이사진 중 한 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치단체장이 바뀌고 나면 자원봉사단체장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서울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면서 “(전임 센터장에게) 큰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시장이 바뀌면서 (센터장이) 바뀐 게 아니냐는 게 자원봉사계에 떠다니는 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임 센터장 내정자 “외압 있었다고 들었다”
서울시 자원봉사센터는 장 전 센터장의 사퇴 이후 공개모집을 통해 지원자를 모집, 최종적으로 A씨를 후보자로 내정했다. 이 센터 이사 출신인 A씨는 현재 신원조회 절차를 밟고 있다. 큰 문제가 없으면 A씨가 시장의 승인과 이사장의 임명을 통해 신임 센터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A씨의 임명을 놓고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A씨가 센터장에 지원하기 위해 센터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임 센터장 사퇴 이후 바로 공모가 시작된 점을 비춰볼 때 사퇴 전에 이미 정해 놓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특히 A씨의 배우자가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략 공천 후보로 꼽힌 점이 공세의 한 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역시 민주통합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A씨는 본인에 대한 의혹에 대해 ‘기가 막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전 센터장에게 외압이 작용했다는 측면은 시인했다. 그는 “여러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임기가 다 끝나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사직을 양보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배우자 건에 대해선 “그 사람(배우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정치색과 무관하게 자원봉사 계에서 그냥 묵묵히 일 해왔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측의 전임 센터장 사퇴 압력 의혹과 관련해선 “외압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고, 외압과 나는 무관하다”면서도 “다만 전 센터장에게 외압이 들어왔다는 것을 지인에게 들었다. 그 부분은 인정한다”고 말 했다.

또한 “나는 센터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누구보다도 강하게 주장해왔다. 시정 방향이 바뀌면 새로 센터장을 뽑고 하는 그런 게 지난번에도 좀 있었다. 그런 프로세서는 문제라고 본다”면서 “사실 이 자리에 지원할 때 좀 꺼림칙하긴 했다. 그러나 공석이고 내가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원봉사계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본지는 이번 의혹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에게 몇 차례에 걸쳐 해명을 요청했으나 끝내 답변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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