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대문] 두타산을 향해 발걸음을 하다-②
[마루대문] 두타산을 향해 발걸음을 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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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석제(釋帝)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일세 요임금과 같은 무진년에 나라 세워 순임금 시대 지나 하(夏) 나라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제왕운기-전조선기 中>

▲ 두타산의 하늘문(사진=최성애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네 뿌리를 찾다

[글마루=김지윤 기자] 재야학자들 사이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상고사가 두타산에서 그 뿌리를 내렸다. 정확히 두타산성 동쪽 쉰움산(688m)에 있는 천은사(天恩寺)다. ‘하늘의 은혜가 내리는 곳’에서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는 고려가 단군의 적통이자 정통이라는 것을 정립했다. 천손 단군을 천은사에서 조명했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이승휴는 당시 원나라의 간섭하에 있었던 고려를 보며 민족과 국가, 문화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제왕운기(帝王韻紀)’로 엮었다. 단군조선이 고려의 뿌리요, 더 나아가 고려 민족이 천손임을 강조했다. 역사서는 단군조선에서 시작해 기자조선, 삼한, 삼국, 통일신라·발해에서 고려가 비롯됐고 그 정통성을 잇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특히 발해사를 우리나라 역사서 중 최초로 민족사에 넣어 북방 고토에 대한 회복을 강조했다.

이승휴와 두타산, 이 둘은 절묘한 관계에 있다. 이승휴가 조정에 출사한 때는 불혹을 넘긴 41세였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올곧은 선비였다. 당시 조정의 비리에 맞서 왕에게 신랄한 상소를 올리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실력가였던 그는 이후 몇 번이나 조정에 불려나가지만 지나칠 만큼 올곧은 업무처리와 직설적인 상소로 결국 파면당해 천은사에 거하게 됐다.

조정에 있을 때도 그는 민족의 자긍심을 생각했다. 다음 예화를 보자. 원나라의 두 번째 사행에서 이승휴는 왕 원종의 부음 소식을 접했다. 이때 그는 원나라에 있던 세자가 고려식 상복을 입고 상을 치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는 고려의 주체성을 확립시킨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고려왕실이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이승휴는 민족을 위해 홀로 험한 길을 걸었다.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 상고사를 정립하기 위해 두타산에 들어앉았다. 겨울 두타산의 경치를 보며 그는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마음을 산경에 대입하지는 않았을까.

험한 두타 넘으니 극락 청옥에 다다르네

두타산과 이웃한 청옥산은 산세가 비교적 부드럽다. 두타산이 고행이었다면 청옥산은 극락이다. 청옥이라는 이름은 나물 ‘청옥’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불경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을 상징하는 일곱 보석 중 하나도 청옥인지라 산은 고행의 길(두타산) 끝의 극락, 피안의 세계로 불린다.

그래서 산행하는 이들은 고행을 상징하는 험한 두타산을 넘어야만 완만한 청옥산, 곧 극락에 다다른다고 한다.

태백산령을 타고 나온 두 산이지만 박달령을 두고 서로 다른 모습이다. 조금 더 살피면 암릉과 절벽으로 이뤄진 두타산을 ‘골(骨)’, 능선으로 비교적 완만한 청옥산을 ‘육(肉)’으로 본다. 하지만 청옥산이 완만하다고 하지만 해발고도 1403m로 두타산보다 50m가량 높고 눈이 쌓여 있는 터라 산행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청옥산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편안하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따뜻한 집을 향한 발걸음은 가볍다.

올라갈 때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의 설렘과 다르다. 안식의 설렘이다. 산자락에 청옥과 두타가 만나는 계곡이 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릉도원이 딱 이곳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무릉계곡과 반석은 극락의 극치다. 두타산을 오를 때에도 봤지만 산행이 끝난 후에야 무릉세계의 참맛을 맛본다. 무릉계곡과 반석 뒤로 두타산과 청옥산의 설경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이다. 고행과 극락이 하나이듯 두타와 청옥 역시 하나라는 게 단번 느껴진다.

산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골짜기, 능선, 비탈길 등이 있어야 산의 구조가 갖춰진다. 좋든지 싫든지 사람은 홀로 살지 못하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산 역시 흙, 물, 돌, 각종 동식물이 있기에 비로소 산다운 산이 된다.
산행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 산 굽이굽이마다 풍경이 각각 다르다. 비탈길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천혜의 경치를 보면 즐겁다. 각각의 사연과 우여곡절이 이어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완성되듯 산행 역시 이야기이며, 한 편의 드라마다. 여기엔 앞서간 산행인의 발자국을 뒤따르는 이들처럼 역사를 만드는 우리가 있다.

극도로 즐겁거나 또는 평안한 상태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겪어야 달고 단 열매를 맺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때 노력은 새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연구도 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그 목표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목적을 이뤘을 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산에서 삶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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