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대문] 두타산을 향해 발걸음을 하다-①
[마루대문] 두타산을 향해 발걸음을 하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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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 설경(사진제공: 금의혁)

[글마루=김지윤 기자]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정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직접 산을 탔을 때 비로소 산경의 가치를 알 수 있다. 2012년을 앞두고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을 찾은 이들은 감탄한다. ‘고행의 길’이라는 이름의 뜻과 달리 설산(雪山)은 아름다울 뿐이다. 하지만 산마루로 걸음을 향하면서 가파른 산세와 산속에서 바라본 경치로 ‘두타’의 의미를 되뇐다. 거창하지만 불가(佛家)식대로 뜻을 풀이하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다.

암릉과 신선이 머무를 법한 암반계곡으로 이뤄진 두타산은 절경으로 꼽힌다. 산자락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멋있지만 중턱과 마루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파른 산세로 오르기엔 힘들지만 태백준령에서 전해오는 정기와 산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진풍경, 그리고 한 편의 대서사극이 조화를 이뤄 산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릉계곡, 무릉반석, 삼화사, 하늘문, 두타산성, 박달령계곡, 청옥산 등 뛰어난 문화유적지와 자연경관지에서 오
래 머무르는 이들이 많다.

차가운 기운이 옷깃으로 스며든다. 무릉계곡에 다다랐을 때 써늘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들어온다. 코가 시큰거릴 정도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맛보는 찬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다.

경관은 어떠한가. 자연이 만든 기암괴석은 거북이, 장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매력을 뽐내 웃음을 자아낸다. 걷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걸음을 잠시 멈추자. 그리고 경관을 보며 산의 정기와 해학을 감상한 후 떠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걷다 보면 두타산이 희로애락을 담은 인생과 닮았음을 체감하게 된다.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 두타산에는 발목 위로 올라올 만큼 눈이 쌓였다. 산행 초입, 눈으로 덮여 길이 보이지 않고 인적도 드물다. 삼화사에서 등산로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학소대로 가는 왼쪽 길과 관음암으로 가는 오른쪽 길이다. 하늘문을 통과하기 위해 오른쪽 관음암 길을 택했다. 이 길은 학소대보다 덜 알려졌다. 관음암까지는 철계단을 의존해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길이 그리 험하지 않다. 관음암을 지나 하늘문에 이르는 길이 힘들다. 이 길을 걷는 이는 마치 작은 극락에 도달하기 위해 고행하는 어느 수행자의 모습과 같다.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펼쳐진 반석에 서면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진다.

좁고 험한 길을 따라 다다른 하늘문. 이름만 들으면 정상과 가까울 듯하지만 두타산 정상의 1/4 지점이다. 이곳 정상은 신선바위와 함께 풍광이 가장 좋은 전망대다.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봉우리는 두타산 정상과 청옥산이다.

그 아래로 펼쳐진 300여 개의 경사진 계단이 보인다. 장정들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계단이다. 90도 가까이 되는 급경사이다 보니 안내판엔 ‘노약자나 어린이는 통행 시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주의 문구가 있다. 철제 난간을 잡고 층계를 내려가면 피마름골이 나온다. 명칭은 피나무가 많아서 피마름골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목숨을 잃은 이들의 피가 흘러 붙여졌다고도 전해진다.

하늘문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숙연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넋이 이 문을 통과해 저 피안의 세계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임진왜란의 흔적은 두타산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라 102년에 축조된 산성은 지금은 남아 있는 터로 그 길이를 짐작할 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피란민들이 모여 이 지방으로 쳐들어온 왜군 5천여 명을 물리쳤다. 이때 피해자도 약 2천 명이라고 하니 7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피가 두타산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타산성의 비극은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 일대에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김지하 시인은 무릉계곡에서 귀신의 울음소리를 들어 도망치듯 골짜기에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을 ‘검은산’으로 표현했다. 우리네의 아픈 역사를 나타낸 셈이다.

두타산은 선조들의 희생을 수백 년이 지나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산성을 지나 정상을 오르는 길이 좁고 험하다. 하늘문을 통과하면 편한 길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일찍이 접는 게 좋다. 어느 곳을 보더라도 쉬운 길은 없다. 청옥산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두타산에서 편안한 길을 찾는 게 어렵다. 두타산성에서 햇대등을 지나 도착한 두타산 정상. 하늘과 맞닿은 산마루 설경은 머리가 시릴 만큼 상쾌하다. 차디찬 바람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고행의 길을 걸었다. 산을 오를 당시는 몰랐으나 정상에 다다르니 산의 이름이 왜 ‘두타’인지 그제야 깨닫는다.

겨울 두타산행은 오로지 나와 산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한계가 찾아왔을 때 ‘정상에 도달할지, 가는 걸음을 멈추고 하산할지’가 가장 큰 관건이다. 그러면서 오르는 이는 자신을 생각한다. 그리곤 깨닫는다. 산을 오를 때의 모습과 평상시 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때 비로소 극락에 다다른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고행은 현재의 세계에서 더 나은 세계에 나아가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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