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중략).”

안도현 시인의 작시(作詩) ‘연탄 한 장’의 일부다. 내용처럼 연탄은 온 몸을 불태워 재가 될 때까지 열을 내 추운 겨울 따뜻함을 전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 시골에서도 연탄을 때는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연탄은 그 옛날 우리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문화였다.

우리나라 1960~1980년대에는 연탄이 가장 소중한 연료였다. 1966년 10월 연탄파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서울시 동장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은 저마다 “연탄이 귀해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는 내용을 줄기차게 보도했다. 그만큼 연탄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긴급회의를 통해 “장관직을 내놓을 각오로 조속한 시일 안에 필요량의 연탄공급계획을 실천하라”는 지시를 내려 석탄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철도 등이 생겨나게 됐다.

사람들은 월동 준비 첫 단계로 집 연탄창고에 연탄을 저장해 놓았다. 연탄공장에서 연탄이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배달 차량이 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 나갔던 우리네 시절이다.

당시는 오늘날의 주유소보다 더 흔한 것이 연탄가게였다. 연탄가게는 공장과 달리 연탄을 낱장으로 판매했다. 아랫부분을 홀쳐 묶은 새끼줄로 낱장의 연탄을 구멍에 꿰어 양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은 겨울철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반면 연탄가스로 인한 질식사 등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여러 개의 공기구멍이 뚫려 있어 구공탄 또는 구멍탄이라고도 불리던 연탄. 깊은 지하에서 석탄을 채취하던 광부의 땀이 서려있고, 온 몸을 불태워 따뜻한 아랫목을 마련해 주던 연탄은 어렵고 힘든 시절 매서운 추위를 이기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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