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시절 故 박병선 박사는 ‘파란 책속에 묻혀 사는 여성’이라고 불렸다. 도서관에서 13년(1967~1980) 근무하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푸른색 비단으로 싸인 외규장각 도서(총 297권)를 펼쳤다. 그리고 목차와 내용을 필사했다.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유한 골동품까지 팔았다. 의궤 연구에 집중한 그는 제대로 된 식사 대신 물과 커피로 배를 채웠다. 이러한 열정은 외규장각 의궤 장기대여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박 박사에 대해 비밀을 외부에 누설한 반역자 취급을 하며 박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결국 한국에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알렸다는 이유로 사실상의 해고조치를 취했다.

박 박사는 도서관 측의 ‘의궤 도서 대출금지 조치’에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출근투쟁을 하면서 과장의 허가하에 하루 한 권씩 대출을 받았다. 이후 몇 년간 계속되는 박사의 연구 노력에 결국 의궤 도서를 자유롭게 대출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발견된 의궤 도서는 일부 찢어지고 훼손되는 등 ‘파지’ 상태였다. 박 박사의 의궤 연구 발표 이후 외규장각 사료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에서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도서는 파지에서 ‘중요 도서’로 격상됐다.

그는 최근 프랑스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들을 조명하고 있었다.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선생의 행적을 조사했다. 김규식 선생 일행이 파리 9구 샤또덩 38번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리고 조국의 독립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 장소를 박 박사가 발견했다. 이후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아 기념 현판을 그곳에 걸었다.

박 박사는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Ⅰ(2008)’을 출간했으며 파리에서 독립운동 활동상을 펼친 김규식 박사 일행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독립기념관 건립을 소원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중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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