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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 나이로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왕실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 1952년 26세의 나이로 여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역사상 최장 군주로 기록됐다. 사진은 1989년 3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바베이도스 공항에서 환영식에 참석한 모습.

[천지일보=이솜 기자] 8일(현지시간) 서거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70년 동안 군주의 기록을 잇달아 경신하면서 자신이 통치한 나라의 영원한 상징이 됐다.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부 평론가들은 여왕의 통치 기간을 400년 전 권력이 성장하고 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에 영국을 통치했던 엘리자베스 1세를 연상시키는 ‘황금시대’라고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왕실이 공직자에게 주는 최고 기사도 훈장인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을 흑인 최초로 받은 발레리 아모스는 “우리는 여왕의 프리즘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여졌다고 생각한다”며 “그가 보여준 지혜,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영국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명백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엘리자베스 1세 이후 군주의 권력이 위축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에 끼친 영향은 전보다 덜하다고 평가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경제가 성장하고, 영국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의 희곡을 썼던 16세기에 44년 동안 왕좌에 있었다. 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한 방송에서 “어떤 사람들은 나의 통치가 새로운 엘리자베스 시대를 의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했다”며 “솔직히, 나는 나의 위대한 튜더 조상처럼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왕은 왕정이 빠른 변화의 시대에서 살아남도록 만들었고, 많은 이들은 이 유산을 인정한다. 손자 윌리엄 왕자는 2012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여왕이 할 수 있는 한 21세기에 군주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배급제는 여전히 유지됐었고 윈스턴 처칠은 총리였다.

이후, 대통령, 교황, 총리들이 오고 가고 소련은 붕괴되고 영국의 제국은 사라졌으며 엘리자베스 2세가가 창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56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으로 대체됐다.

영국 헌정사 전문가인 버논 보그다노르 교수는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 중 어느 나라도 그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영국에서는 평화롭고 합의된 방식으로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전체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는 매우 놀라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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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 나이로 서거해 버크셔주의 윈저성 밖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라고 밝혔다. 1952년 26세의 나이로 여왕으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군주 중 최장 군주로 기록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정치적 문제와 관련 인터뷰를 하거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영국 역사상 가장 긴 그녀의 통치에 대한 그 자신의 평가는 확인하기 어렵다. 왕실 고위 보좌관은 로이터 통신에 여왕의 유산을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로 간주할 것이라고 전했다.

헌법사학자 데이비드 스타키는 여왕이 자신을 역할을 ‘역사적인 시대 구현’이 아닌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여겼다고 봤다. 그는 지난 2015년에 “여왕은 누구도 기억할 만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며 “나는 이를 비난이 아닌 단순히 사실로 말한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왕위에 올랐다. 왕실의 쇼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역사학자들과 전기 작가들은 스타키의 견해는 여왕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시대와 함께 움직인 방식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1992년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전기를 쓴 앤드류 모턴은 “점점 혼란스러워져가는 세계에서 왕비는 안정감을 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여왕의 ‘소프트 파워’ 평가도 나온다.

헌법상 영국 주권자는 실질적인 권한이 거의 없으며 초당파로 예상되지만 여왕은 소프트 파워를 휘둘렀으며 코로나19 범유행 속 방송을 통해 군주제를 통합의 중심점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치적 갈등이 있을 때에도 여왕은 총리를 만나 주간 보고를 받았다.

전직 지도자들은 그녀의 오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의 지도자였던 존 메이어는 “여왕에게는 완전하고 순전히 솔직할 수 있고 심지어 경솔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여왕에 대해 엘리트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존경을 표하던 시대의 군주이자 마지막 여왕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런던시 대학의 군주 역사 교수인 안나 화이트록은 “여왕은 그가 목격한 변화의 기간 동안 가장 위대한 군주들 중 한 명으로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여왕은) 엘리자베스 1세처럼 영국과 영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똑같이 중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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