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최근 반지하 주택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이어졌던 집중호우로 인해 반지하에 살고 있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는 향후 반지하와 지하 주택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반지하 주택의 경우 10~20년의 유예기간을 놓고 건물주에게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용적률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진행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정책이 이전에 나온 반지하 관련 정책과 차별점이 없을뿐더러, 다른 주거 형태의 가격을 올리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번 폭우 이후 서울시는 반지하 세입자에게 지상으로 이사할 경우 최장 2년간 월 2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반지하에 살던 주거 취약계층이 지상에서 2년 동안 거처를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이후 지원이 더 이상 없다면 이들에게는 부담이 배가 될 수 있다. 자칫 지상으로 나온 것이 감당치 못할 수준이 돼 다시 반지하로 들어가거나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전국의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 7320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96%가 수도권에 집중됐고, 서울 시내 지하·반지하 주택은 20만 849가구에 달했다. 또 서울시 전체 가구(301만 5371가구)의 6.6%다. 관악구(2만 113가구), 중랑구(1만 4126가구), 광진구(1만 4112가구) 등 노후주택 단지에 몰려있다.
서울시가 이달 중 반지하주택 현황 파악과 시내 전체 반지하·지하 주택 전수조사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반지하 퇴출 정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시민단체 등은 장기적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을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반지하주택을 대체할 임대주택 공급계획 등이 빠진 ‘공허한 대책’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폭우로 서울에서만 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 중 절반인 4명이 반지하 가구에서 나왔다. 지난해 서울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지상으로 간 비율은 0.3%에 그치는 등 반지하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이 지상의 번듯한 주거공간을 가지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어쭙잖은 대책만 내놓는다면 상황은 상황대로 악화되고 피해자만 더 늘어나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서울시는 일차원적인 미봉책을 제시하는 것에 급급하기보다 반지하 주택에 대한 현실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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