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정당화, 5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민족말살 시작, 의도적 파괴 위한 수단
오늘날 식민지 근대화론 왜곡돼
日민족성 다시금 확인하는 만행
궁궐·전각 등 4000개 건물 사라져
한국사 교과서 공진회 언급 적어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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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우리 조선의 정신적 상징인 경복궁 일대를 훼손하기 위한 명분과 목적으로 1915년 9월부터 약 두 달간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모습. 경복궁 경회루 옆에 공진회 선전탑들이 세워졌고 많은 건물이 지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던 전각 등 궁궐 건물들을 전부 부수고 지은 것이다. 이곳에 관람하러 온 많은 일본인과 백의를 입은 조선인들이 보인다. 오른쪽 선전탑은 ‘경성생명보험’을 광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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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9월부터 약 두 달간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 행사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탑에는 기린 맥주(키린 비루) 회사 이름이 보여 공진회에 일본 기업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8.16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일제가 우리 조선의 민족말살 정책의 시작으로 경복궁 일대를 훼손하기 위한 명분과 목적으로 1915년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의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기록사진들을 공개한다. 사진들은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로부터 입수해 단독으로 최초 공개하는 사진들이다.

공진회는 일제가 강제병합 5주년을 맞아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5주년 기념 축하사업으로 벌인 일종의 산업박람회다.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됐고, 개최 장소는 경복궁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즈음에 함께 조선총독부 청사도 경복궁 근정전 앞 건물들을 헐고 짓기 시작했다.

일제는 ‘함께 나아간다’는 뜻의 ‘공진(共進)’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5년간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조선과 일제가 같이 발전한다는 식의 명분을 사용했으나 이는 경복궁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기 위한 노림수에 불과했다.

일제는 1913년부터 자신들의 무단통치를 다른 나라에 합리적인 수단인 것처럼 홍보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조선물산공진회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문화말살 정책의 본보기로 조선왕실을 자연스럽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조선 왕조의 근간이 된 경복궁을 행사 장소로 잡고, 1913년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각종 부스 개념의 시설물을 짓기 시작했다. 약 2년에 걸친 공사 기간 동안 경복궁의 수많은 건물들이 멋대로 이전되거나 아예 철거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약 4000개의 건물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근정전, 경회루, 교태전 등 극히 일부만 남고 흥례문을 비롯한 경복궁의 전각 90% 이상이 헐렸다. 경회루는 행사 기간 술판을 벌이기 위한 장소로 사용됐다.

일제는 그뿐 아니라 경복궁 근정전 주변에는 혐오감을 주기 위해 돼지 축사를 만드는 것은 물론 오늘날 놀이공원에 가면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열차까지 경복궁 내에 만들어 경복궁을 아예 놀이공원처럼 만들어버렸다. 한 나라의 왕실이 있는 곳을 격하시키기 위한 의도임을 다분히 알 수 있는 일본의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일제는 조선왕실의 정체성을 마비시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흐리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진회 행사를 자연스럽게 만든 것이다. 당시 공진회에는 약 120만명이 관람하는 등 하루에 평균 수천명이 입장했다. 곧 우리의 임금이 있었던 신성한 경복궁이 일제에 의해 번잡한 ‘도떼기시장’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경복궁을 평소 볼 기회가 없었던 일반 조선인들은 조선궁궐이 놀이터처럼 전락한 모습을 마주하며 이를 당연한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것이 바로 일제가 원한 그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진회 행사장에 진열된 물품들은 대부분 한반도 각지에서 생산된 것도 있었으나 당시 직거래 루트가 확보된 도쿄, 오사카, 나가사키 등에서 생산된 일본의 상품들도 병행 전시됐다. 일본에서 들여온 상품들은 일본의 우수한 생산력과 품질을 앞세워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꺾는 주요 수단도 됐으며, 나아가 일제에 대한 경외심을 만들려는 목적도 내포돼 있었다. 이 때문에 공진회는 한때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 근거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지속적인 연구로 공진회를 통해 일제가 무차별적으로 경복궁을 훼손했다는 점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되기도 했다.

분명 공진회 행사는 500년 역사의 조선왕실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경복궁 일대가 일제에 의해 90% 건물들이 파괴되고 심각하게 이미지가 격추된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한국사 교육 과정에서 이 공진회와 관련된 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공진회의 실체를 다루지 않거나 일부는 자투리 설명 등에 그치고 있다.

일제는 1915년 공진회에 이어 1929년에도 비슷한 기간(9월 12일~10월 31일)동안 조선박람회를 개최했는데 그 성격은 비슷했다. 공진회 때 지어진 건물들을 그대로 활용해 똑같이 경복궁 일대를 다시금 도떼기시장처럼 만들었으며 이때는 조선총독부 청사까지 완공(1926년)된 뒤라 식민지배 명분과 위력을 더 대내외에 보여주는 목적으로 삼았다.

이에 공진회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더 정확히 확인시키기 위해 이번 사진들을 공개하게 됐다.

사진을 보면 한가운데 기린 맥주(키린 비루, キリンビール) 회사 이름이 새겨진 기둥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이 일본 현지로 착각할 정도다. 다른 사진을 보면 경회루 주변으로 공진회 관련 광고탑들과 건물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움직이고 있다. 일본인들뿐 아니라 백의를 입은 조선인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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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 때 경복궁 내에는 이같이 오늘날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이동열차를 일정구간 기차선로까지 만들어 운영했다. 당시 평소 기차를 타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많은 조선인들이 돈을 내고 기차를 경험해보며 신기한 체험을 했으나 조선 왕실의 상징인 경복궁을 놀이터로 취급하고 전락시킨 것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8.16

또 다른 사진은 철도 선로가 놓여 있고 열차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이동하는 모습이다. 이는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이동열차인데, 이것이 경복궁 안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 자체다. 공진회 때 경복궁 일대에 지어진 건물들의 전경도 확인할 수 있고 또 다른 전경사진은 놀이공원의 모습과 흡사한데 조선총독부 청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1929년 조선박람회 사진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진회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사진을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다. 일제가 ‘공진’이라는 말로 형식적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지만 이는 포장된 것에 불과하다. 만약 한 나라에 대한 존중이라도 있었으면 경복궁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공진회는 일제의 민족성까지도 새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만행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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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회 행사 전경. 경복궁 근정전(오른쪽) 옆으로 공진회 선전탑과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얼핏 보면 경복궁인지 일본 현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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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주변 전경.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29년 조선박람회임을 알 수 있다. 공진회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 곳곳에 선전탑이 보이고, 놀이공원을 방불케 한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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