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경영자 처벌 완화’ 담아
“법 효과 서서히 나오는데 왠말
‘안전한 일터’ 염원 저버리는 일”
 
노동부 수사 38건, 송치 12건
검찰지휘 없어 기소 고작 1건
“제정보다 집행이 더욱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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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의 엄정한 집행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7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정부와 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규모 손질을 예고하자 전문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13개 단체로 구성된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의 엄정한 집행을 촉구했다.

이날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지난 1981년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됐으나 그간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은 기업의 생산과 이윤 추구에 불가피한 현상으로 치부돼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매년 산재로 2000여명이 목숨을 잃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며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은 이를 몰각한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적용대상 기업에서 사고사망자 수가 약 20% 감소했고 이제 그 효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며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재계와 사용자의 일방적인 요구에 부응해 법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안전한 일터를 희망하는 국민적 염원을 저버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이 말이 진심이라면 정부와 집권여당은 안전에 대한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축소하고 책임을 완화하려는 퇴행적 추진을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희주 공동대표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법 개정 방향이 동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지, 특히 시행령을 통해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고 헌법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법무부 소관으로 추진하는 것 또한 부실 운영 가능성이 없는지와 행정체계적으로 맞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6개월째를 맞았지만 산업 현장에선 여전히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산재 사고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송치한 ‘크레인 오작동 안전벨트 압착 사망사고’ 등 수많은 사건들이 검찰의 지휘가 없어 기소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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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10일째인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살인기업 처벌 강화!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촉구! 건설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20

이날 노동부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달 말까지 이 법이 규정한 중대 산업재해는 유해화학물질 함유 세척제에 의한 집단 급성중독 2건 등 모두 85건이 발생했다. 그중 절반가량이 건설업 관련 사건이다. 노동부에 의해 수사가 이뤄진 사건은 38건에 불과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수도 12건에 그쳤다.

특히 검찰에 의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현재까지 단 한 건밖에 없다. 유일하게 기소된 사건은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인 두성산업에서 노동자 16명이 집단 급성중독된 사건이다. (관련기사: [단독] 중대재해법 시행 6개월째, 산업현장서 사망 이어져도 기소조차 안 돼).

이에 대해 문은영 변호사는 천지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송치된 사건 중 검찰로부터 오직 한건의 기소만 이뤄졌는데 기소뿐 아니라 적극적인 수사지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10만 국민의 입법청원을 통해 제정된 법인 만큼 검찰은 수사와 기소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올해 1월 27일부터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아 노동자나 이용자를 사망이나 부상에 이르게 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유예기간을 거친 뒤 오는 2024년 1월부터 적용된다.

이처럼 산업 현장에선 여전히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시행된 지 반년이 채 안 돼 중대재해법에 대한 대규모 손질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중대재해법 개정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이날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는 법무부 주도로 이 법의 시행령을 개정해 ‘법무부 장관의 인증을 받은 기업의 경우 산재가 발생해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처벌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는 것’ 등이 포함됐다.

이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CEO가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보건 확보 조치를 했다면 처벌 형량을 감경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를 담은 개정안이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산업현장 상황에 과연 맞을지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은희 변호사는 이날 “새롭게 제정된 중대재해법이 단순히 경영책임자의 처벌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처벌을 통해 궁극적으론 기업으로 하여금 ‘안전보건관리체계’와 같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적·체계적 안전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본래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많은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로 탄생한 중대재해법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는 법률을 만든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다. 법률의 효력은 제정이 아니라 그 집행에 달려있기 때문”이라며 “노동부와 검찰·법원 등 수사 및 사법기관들이 중대재해법 취지를 잘 살리도록 법을 적용 집행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중대재해전문가넷’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 대통령비서실 선임 대우 행정관과 면담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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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중대재해전문가넷’이 7일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 대통령비서실 선임 대우 행정관과 면담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촉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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