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2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이 본관 내부 관람을 하러 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2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이 본관 내부 관람을 하러 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천지일보DB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에 한 달 새 77만여명이 다녀갔다.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를 향한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다. 역대 대통령이 살았던 금단의 땅이 개방되자, 이 공간에 호기심을 갖던 국민의 행렬이 줄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되자 청와대를 두고 다양한 활용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광 차원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달 새 국민 77만명 방문 

20일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에 따르면, 청와대 개방 한 달 만인 지난 10일 77만 7242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개방일부터 5월 22일까지 특별 개방행사 기간에는 궁중문화축전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이 마련됐고, 5월 23일 이후부터는 청와대 관리 권한을 위임받은 추진단이 영빈관과 춘추관, 본관, 관저 등 청와대 주요 건물의 내부를 순차적으로 개방해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국빈 만찬 모습이 재현된 영빈관은 첫 공개 이후 6월 9일까지 각 20만 4513명,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사용된 춘추관은 같은 기간 10만 1355명이 다녀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공개된 2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내 무궁화실을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공개된 2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내 무궁화실을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DB

청와대가 자리 잡은 북악산 남쪽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 이궁이 이곳에 들어서면서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 곳을 삼경으로 뒀고,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離宮)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다. 남경은 ‘남쪽의 서울’이라는 뜻이다.

고려 남경 이궁이었던 청와대 권역은 조선 건국 이후 경복궁 후원으로 조성됐다.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 폐허로 방치되다가 조선 말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의 후원이 만들어졌다. 경무대로 통칭된 후원은 융문당, 융무당 등 모두 488칸의 건물이 들어섰다. 융문당은 왕 또는 문관들이 모여 글을 짓고 연회를 열던 곳이다. 당시 실시한 과거 시험의 중심 건물이다. 융무당은 과거 시험의 무과 활쏘기 시합, 군사들의 교체 훈련 시 사용됐다. 하지만 이 두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훼철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다. 총독관사는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집무실 및 관저로 이용됐고, 1991년 지금의 본관 건물을 새로 지어 집무실을 옮기게 됐다. 이처럼 정치적 권력자의 공간으로 사용된 땅이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2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천지일보 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와대 본관 및 관저 내부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26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천지일보 DB

◆청와대 활용 두고 의견 분분 

청와대는 1948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12명의 대통령이 사용했다. 현재 서울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된 후 이곳 청와대의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각계각층에서는 박물관이나 공연장, 미술관 등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청와대 권역 전체를 ‘근대 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하자는 목소리도 있고, 미술계에서는 국립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터가 갖는 가치와 역사성부터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급하게 이뤄진 청와대 개방이 시민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시민이 청와대의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땅만 밝고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은 최근 열린 ‘청와대 개방 이후 심포지엄’을 통해 “청와대의 갑작스러운 개방은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인해 방문객과 주민 간의 갈등, 환경오염, 문화재 훼손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후세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앞으로 어떻게 근현대사를 포함한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공간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유산연구센터 이현경 연구교수는 해외 모범 사례를 통해 청와대의 개방을 설명했다. 이 연구교수는 “런던탑은 중세시대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근현대기 전쟁으로 인한 상처까지도 런던탑의 역사로 품으면서 관람객의 적극적인 추모 참여를 독려했다”며 “청와대 단독적인 공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광화문, 경복궁과 함께 이해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층적인 청와대의 의미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의 사례를 교훈 삼아 청와대 공간의 수용인원 측정을 실시하고, 철저하게 수용인원 제한을 지켜야 한다면서 과잉수용을 막기 위한 관람 코스 설정, 관람 금지 구역 설정으로 ‘관람존(zone)’이 명확히 설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정비의 또 다른 과제는 관저 뒤편에 자리한 불상이다. 보물 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통일신라 불교양식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로 ‘미남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간 경주 문화계는 청와대 ‘미남불’ 반환을 요구해왔고,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시민운동본부는 지난달 ‘미남불 경주 반환 탄원서’를 대통령실에 접수했다. ‘미남불’은 일제강점기에 총독관저가 있던 남산으로 옮겨졌고 다시 총독관저가 청와대로 이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조선과 현대의 역사를 지닌 청와대가 국민에게 돌아왔다. 아직은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남아있지만, 청와대가 지닌 역사와 문화가 국민에게 온전히 잘 전달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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