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이식쿨(Issyk Kul) 호수 인근 한 마을에서 발견된 묘비(가운데)와 년도별 묘비 수(오른쪽). 묘비에는 역병 관련 내용이 적혀있었다. (출처: 네이처 홈페이지 캡처)
키르기스스탄 이식쿨(Issyk Kul) 호수 인근 한 마을에서 발견된 묘비(가운데)와 년도별 묘비 수(오른쪽). 묘비에는 역병 관련 내용이 적혀있었다. (출처: 네이처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이솜 기자] 14세기 중반에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유럽 인구를 반토막 낸 중세 흑사병이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북부에서 시작됐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 결과는 19세기 초까지 반복적으로 발병했고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 흔적을 남긴 흑사병이 중국에서 처음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다른 이론들에 배치된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스털링대학 역사학자 필 슬라빈 박사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1338~1339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Issyk Kul) 호수 인근 한 마을에서 이례적으로 사망자가 급증한 사건을 주목하며 이곳에서 발견된 시체의 DNA를 검출해 게놈 분석을 진행했다.

이들은 ‘1338년 전염병으로 숨졌다’고 적힌 묘비들과 함께 여기에 묻힌 사람들에게서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을 발견했다.

연구원들은 중국 우한에서 발견된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알파, 델타, 오미크론 변종이 나온 것처럼 이번에 발견된 페스트균이 모든 흑사병 변종에 앞선 형태라고 분석했다.

논문 제1 저자인 튀빙겐대학의 마리아 스피로우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고대 페스트균은 정확히 이 거대한 다양화 사건의 중심에 위치한다”며 “다시 말해, 우리는 흑사병의 근원 종을 발견했고 심지어 그것의 정확한 날짜(1338년)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쥐와 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이 질병은 결국 1347년 흑해에 도착한 무역선을 타고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기상이변 등으로 키르기스스탄 계곡의 설치류가 부쩍 늘어나 이 과정에서 페스트균이 1338~1339년 폭발적 변이를 겪고 치명적 전염병이 됐다고 추정했는데, 이 가설을 입증하려면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