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ECHR)는 러시아가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 등에 대해 '해외 첩보원' 딱지를 붙여 탄압하는 것은 유럽인권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ECHR은 73개 비정부기구(NGO)를 해외 첩보원으로 지정한 러시아 법은 유럽인권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 러시아가 단체에 피해보상으로 102만 유로(약 13억 7000만원)와 소송비용으로 11만9천유로(약 1억 6000만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ECHR에 제소한 단체는 해외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가 첩보원으로 규정하고 가혹한 감사를 하거나 집회 및 기타 활동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유럽인권조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유럽인권조약은 인권과 기본 자유를 보호한다는 내용으로 러시아를 포함한 32개국이 서명하고 1953년 발효했다.

러시아 당국이 이들 단체에 적용한 일명 '해외첩보원법'은 해외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국내 정치활동에 연루됐다고 판단하면 간첩으로 지정하는 내용으로, 2012년부터 시행됐다. 비영리기관이나 언론, 개인 등으로도 적용 범위가 확대돼왔다.

법 적용을 받으면 모든 활동에 해외 첩보원임을 알리는 경고 딱지가 붙게 된다. 또 주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을 보고하고 재무감사도 받아야 한다.

이날 ECHR의 판결은 러시아가 해외첩보원법을 한층 강화하는 움직임 속에서 나왔다. 지난 7일 러시아 하원은 해외에서 지원을 받았다면 별도의 조건 없이도 해외 첩보원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가 ECHR 관할권에서 벗어난 상태여서 판결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7일 러시아 의회는 ECHR 관할권과 관련해 두 가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나는 러시아에 대해 ECHR 관할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3월 15일 이후 나온 판결은 러시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3월 15일은 러시아가 유럽평의회를 탈퇴한 날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올 9월 유럽인권조약 서명국으로서의 지위도 상실하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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