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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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영화 ‘도둑들’이 천만 관객을 넘었을 때, 영화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액션 영화라고 하지만 그냥 물건을 훔치는 절도범들의 대결과 싸움이 스토리라인이었다. 표적이 된 물건을 훔치는 과정에 주목할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도둑 일파를 응원하는 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이렇게 스토리 전개 구조가 단순 명확한 영화가 큰 인기를 끄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은 절대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아무리 3년 만에 돌아온 정상 영화관 상영 분위기라지만, 이 영화의 천만 돌파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시놉시스는 잔혹한 살인 납치 범죄자를 혼내주고 감옥에 보내는 형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혹 코믹한 장면이 있지만, 주로 잔혹한 살해 장면과 폭력이 중심이다. 일부에서는 대세 손석구의 힘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해방일지’ 덕분이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손석구는 섹스 칼럼 때문에 전종서를 속이며 기망 행위를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손석구는 호빠 포주로 나온다. 경계에서 이제 범죄자 캐릭터로 굳어진다. 그래도 인간적인 미덕이라도 있지만 ‘범죄도시2’에서는 완전한 최악의 냉혈 분노 폭발형 범죄자로 변한다.

우선은 강력한 마동석 효과 때문인데, 특히 원 펀치 기대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원 펀치는 나쁜 놈들을 통쾌하게 혼내줄 때 의미가 있다. 그 나쁜 놈들이 나쁠수록 바람직하다. 손석구는 말 그대로 나쁜 놈이다. 개인적인 사정이나 상처 따위는 들추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돈을 위해 폭력과 납치, 살인을 서슴지 않는다. 그 주변에는 온통 그런 빌런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포진하고 있을 뿐이다. 공권력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베트남에서 한국인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마동석은 원 펀치로 나쁜 놈들을 넉다운 시켜 버린다.

“너 좀 맞자” 입버릇처럼 마동석은 나쁜 놈들은 주로 칼이나 총을 들지만 오로지 주먹 한 방으로 그자들을 혼내주는 장면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기존 영화에서 경찰은 주로 총이나, 공권력으로 범죄자를 체포하던 방식과 다르다. 더구나 마동석 캐릭터는 조폭 같이 생겼고, 완력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지만, 상당히 영리한 작전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다. 그 작전의 기획과 실행 과정을 통해 단순히 완력만 사용하는 액션 영화와 다른 결을 갖게 된다. 더구나 코믹한 장면들은 마동석이 없다면 절대 살아날 수가 없는 설정이나 대사에서 나온다.

한 가지 특징이 형성되고 있는데 나쁜 놈과 선한 자, 그 구별될수록 한국 액션 영화는 명확해지고 있다.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나 제도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대중영화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매우 강해진다. 영화 ‘브로커’에서 형사(배두나)는 아이를 매매하는 일당을 추적한다. 하지만 추적해갈수록 그들이 절대 악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수사관들은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오히려 경찰관이 범인을 잡기 위해 속이고 조작을 한다. 상황은 대안 가족으로 맺어지는 순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에 과연 이런 브로커들이 있을지 알 수가 없지만, 대중적 흥행을 하기에는 매우 무리가 있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 점이 있다. 서양인들이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리 차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범죄 도시 시리즈도 그렇지만 액션 흥행작들을 보면,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로 분별해야 대중적 흥행성이 높아지는 한국 사회 같다. 분명 법치는 필요하다.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과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원 펀치가 필요한 이들은 지능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를 혼내주는 영화는 없어진 지 오래다. 다만 공권력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남의 사정은 헤아릴 여력이 없어지는 한국 사회의 각박함이 아니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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