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니히우=AP/뉴시스]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한 주민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손된 아파트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체르니히우=AP/뉴시스]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한 주민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파손된 아파트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2월 24일~6월 1일 전쟁 주요 사건

[천지일보=이솜 기자] 오는 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탈나치화를 위한 ‘특별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지 100일이 된다. 

전쟁 초기 서방 분석가들은 러시아군의 빠른 침략과 점령을 예상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교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 침공은 지난 2014년 크림반도 때와 달랐다.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수많은 제재,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신청, 그리고 분쟁 지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국가들의 연료와 식량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에 대한 장악력을 넓히면서 수만명의 민간인을 죽이고 도시 전체를 잔해로 만든 100일간의 전투를 되돌아본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의 지하철역에 주민들이 대피해 머물고 있다. 하르키우에서의 포격이 줄어들고 지하철은 내주 초 운행 예정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임시 방공호로 사용하고 있다.
[하르키우=AP/뉴시스] 지난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의 지하철역에 주민들이 대피해 머물고 있다. 하르키우에서의 포격이 줄어들고 지하철은 내주 초 운행 예정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임시 방공호로 사용하고 있다.

-전쟁 1일차(2월 24일): 난민 7만 9209명: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 국토에 걸친 미사일 공격으로 시작됐다. 체르니히우주(州) 센키우카에서 수도 키이우로, 크림반도에서 헤르손으로 러시아군은 밀고 들어왔다. 아조프 해에서 상륙한 수륙양용기는 마리우폴 함락에 나섰다. 키이우에서 러시아 낙하산 부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관저 습격을 두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2월 25일(난민 17만 9525명): 키이우 중심부에서 흑해 바위섬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은 푸틴 대통령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수도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리며 미국의 대피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2월 26일: 서방은 러시아에 전례 없는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 러시아 항공기의 출입이 통제되고 러시아는 스포츠와 문화 행사에서 쫓겨났다.

-2월 28일(난민 65만 2445명): 러시아 헬리콥터 편대가 키이우 외곽의 호스토멜 공항을 장악하며 파멸을 예고했다. 양국은 첫 평화회담을 열었다. 회담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자국의 주권 인정,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나토 가입이 없을 것이란 보장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완전한 철수를 요구했다.

-3월 2일(난민 98만 9172명): 전쟁이 시작된 지 거의 일주일 만에 러시아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항구도시이자 수출의 중심지인 마리우폴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와 친러시아군이 점령한 도네츠크 일부 도시 사이의 육교를 거의 장악했다.

-3월 3일: 우크라이나 남쪽 헤르손은 러시아군에 함락된 첫 도시가 됐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항구를 사정없이 폭격했다.

-3월 4일: 러시아는 이른바 ‘가짜 뉴스’를 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특별 군사 작전’을 침략으로 지칭한다면 최고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됐다.

-3월 15일(난민 255만 41명): 전쟁 시작 후 2주, 미 국방부는 키이우 북서쪽으로 64㎞ 떨어진 러시아군 부대가 발사 위치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3월 16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마리우폴 극장이 파괴돼 300명이 숨졌다.

-3월 29일(난민 392만 9721명): 러시아는 터키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일부 지역에서의 군사 활동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폭격은 계속됐지만 러시아군은 북쪽에서 퇴각을 시작했다.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증거가 발견됐다.

[키이우=AP/뉴시스] 3월 3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러시아군 진지에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러시아군 병사의 손이 보인다.
[키이우=AP/뉴시스] 3월 3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러시아군 진지에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러시아군 병사의 손이 보인다.

◆러, 키이우 후퇴 및 동부 공세 전환

-4월 8일: 크라마토르스크 동부의 한 기차역에서 로켓 공격으로 돈바스에서 대피하던 민간인 57명이 사망했다.

-4월 14일(난민 477만 7081명):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흑해 기함인 모스크바호를 침몰시켰다. 중요하고 상징적인 승리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해상 봉쇄는 계속됐다.

-4월 18일(난민 495만 9759명): 러시아군이 재배치되는 거의 3주간의 비교적 평온한 시간 후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동쪽에서 새로운 공세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초기 전략적 목표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으로 전선에 배치된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지움과 도네츠크 근처의 옛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일상화됐다.

-5월 9일(난민 593만 3189명): 많은 소문에도 푸틴 대통령은 2차 대전 전승 기념일 연설에서 승리 선언이나 특별 발표를 하지 않았다.

-5월 13일(난민 609만 4809명): 러시아의 동부 돈바스 공세에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지움 남동쪽의 세베르스키 도네츠 강을 건너기 위해 폰툰 다리를 사용해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려던 계획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로 실패했다.

-5월 16일: 우크라이나는 자국 군대가 러시아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 외곽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러시아군을 몰아냈다고 밝혔다.

-5월 18일: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수십년간 지속된 군사적 비동맹 관계를 뒤집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5월 17일: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대대는 마침내 항복하고 러시아군 점령 지역에 갔다. 우크라이나는 그들이 포로 교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일부 러시아 관리들은 그들이 재판에 회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23일: 우크라이나 법원이 개전 첫날 우크라이나 북동부 지역에서 민간인 62세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혐의로 21세 러시아 군인의 혐의를 전쟁범죄로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항소했다.

-6월 1일(난민 627만 6834명):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핵심도시인 세베로도네츠크의 일부를 점령했다. 이 도시 전체를 지배한다면 돈바스를 구성하는 두 지역 중 하나인 루한스크를 사실상 통제하게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