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정상들이 지난 5월 30일 심야까지 이어진 회의(사진)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부분 금수조치에 합의했다. 이번 제재는 러시아산 원유 해상 운송 물량에 대해서만 금수 조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안팎에서는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EU 정상들이 지난 5월 30일 심야까지 이어진 회의(사진)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부분 금수조치에 합의했다. 이번 제재는 러시아산 원유 해상 운송 물량에 대해서만 금수 조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안팎에서는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서방 러시아산 원유 금수 제재

전쟁 이후 원유 수출입 재구성

“美 ‘셰일 혁명’ 이후 최대 변화”

러, 中·印 등 아시아 수출 개척

아프리카산 원유 찾는 유럽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급속히 바꿔 놓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수입 ‘큰 손’이었던 유럽연합(EU)이 일부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결정하며 세계 2위 화석연료 공급국이던 러시아는 아시아 등 새로운 판로 개척에 나섰다. 유럽 국가들에게는 아프리카산 에너지가 대안으로 급부상한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은 이런 에너지 유통 경로의 변화는 10년 전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시장의 형태가 바뀐 이후 세계 석유 거래의 가장 큰 공급축의 변동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EU, 이견에 러 원유 완전금수 불발

5월 30일(현지시간) EU 27개 정상들은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합의로 수입이 금지된 규모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며 “러시아가 무기 비용을 대는 막대한 돈줄에 제약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번 조치로 연말까지 러시아에서 EU로 수입되는 석유의 90%가량을 사실상 감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제재 패키지에는 개인에 대한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중단, EU에서의 러시아 국영방송 3사 콘텐츠 유통 금지 등도 포함됐다.

이번 금수 조치는 선박을 통해 반입되는 러시아산 석유를 대상으로 하며, 파이프라인으로 운송되는 수입품에 대한 일시적 면제를 허용했다. 이는 육지에 둘러싸인 헝가리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는데, EU 27개국이 만장일치로 지지해야 제재가 통과되기 때문이다.

전쟁 후 EU는 러시아에 제재를 5차례 가했다. 지난 5월 4일에 발표된 여섯 번째 제재는 원유 금수에 대한 회원국들의 이견에 막혀 지연됐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헝가리의 석유 공급 안전이 보장돼야만 새로운 제재를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 헝가리는 러시아로부터 석유의 60%, 천연가스 85% 이상을 공급받으며, 소련 시절의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들어오는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미셸 상임의장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도자들이 곧 이 문제를 논의하며 러시아산 석유의 송유관 수출을 금지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U는 천연가스의 약 40%, 석유의 25%를 러시아로부터 얻고 있다.

◆러, 아시아로… 침공전 수출량 되찾아

러시아는 원유 수출 다변화로 서방의 제재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하일 울리야노프 러시아 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EU 제재에 대해 “러시아는 원유를 공급할 다른 수입처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부과된 미국의 원유 금수 등 제재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벗어나 인도와 중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의 원유 수출이 4월 침공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으며 유가는 3월 배럴당 139달러를 넘어선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인 110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1년 9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 북동쪽 1500㎞에 있는 우신스크 마을 근처에서 석유 굴착기가 가동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11년 9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 북동쪽 1500㎞에 있는 우신스크 마을 근처에서 석유 굴착기가 가동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분석가들은 이번 EU의 제재 조치에도 그 영향이 아시아의 수요로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스위스 은행 줄리어스베어의 노르베르트 뤼커는 로이터에 “서방이 아시아 바이어들에게 외교적 압력을 가하지 않는 한 공급 격차가 확대되고 유가가 급등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EU, 영국의 제재 조치로 러시아 소유의 선박은 이들 나라의 항구에 정박할 수 없게 됐으며 이는 또한 아시아로의 무역 중 해상을 통해 촉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조선 추적업체 페트로로지스 등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바다를 통해 아시아로 유입되는 러시아산 석유의 흐름이 연초 이후 최소 50% 이상 급증했다.

또한 덴마크 해안을 다니던 러시아 선박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지중해로 이동한다. 마크 거버 페트로 로지스틱스 사장은 지중해에서 유조선 간 러시아산 원유와 제품 수송량을 하루 약 40만 배럴로 집계했는데, 이 중 대다수가 아시아로 가며 230만 배럴을 직접 수송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 1월만 해도 약 150만 배럴에 그치던 양이었다.

이 해상 물동량은 러시아 총 수출의 일부에 불과하다. 송유관 공급을 포함하면 4월 러시아 원유 및 제품 총 수출은 800만 배럴을 약간 웃돌며 침략 이전 수준과 비슷하다.

◆유럽, 아프리카·사우디 원유 수입↑

유럽 정유사들은 러시아산 원유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산 원유 수입에 눈을 돌리면서 이는 지난 4월 2018~2021년 평균 대비 17% 증가했다. 또한 에이콘(Eikon) 데이터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앙골라, 카메룬에서 온 원유 66만 배럴이 5월 북서유럽에 도착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의 공급은 3월 이후 30% 증가했다고 페트로 로지스틱스는 말했다. 여기에 유럽 수입 영향으로 나이지리아산 경질원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집트 시디 케리르 항구에서 서북유럽으로 가는 사우디 원유가 5월에 시간당 40만 배럴로 3월에 비해 거의 2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인도가 러시아 공급으로 전환함에 따라 인도의 서아프리카산 원유 물동량은 3월 51만 배럴에서 4월 28만 배럴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거버 사장은 밝혔다.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늘렸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미국의 5월 유럽산 원유 수입량은 3월 대비 15% 이상 증가해 월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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