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결말을 두고 서방이 갈라졌다. 왼쪽부터 빨리 협상과 휴전을 하자는 입장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전쟁을 끝낼 기미가 없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 자체를 약화시키길 원하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전쟁의 결말을 두고 서방이 갈라졌다. 왼쪽부터 빨리 협상과 휴전을 하자는 입장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전쟁을 끝낼 기미가 없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 자체를 약화시키길 원하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우크라 전쟁 끝 두고 서방 분열

이해관계 따라 각각 입장 달라

영토 양보·무기 공급 핵심 문제

“서방 제공에 우크라 선택 달려”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개월 후, 미국과 동맹국들은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조용히 논의하고 있다. 이 전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최근 며칠간 미국 내 민주·공화당 지도부는 물론 대통령과 총리들도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물밑에선 이 승리의 기준에 대한 분열이 있다.

뉴욕타임스(NYT), 일간 가디언, 이코노미스트지 등 외신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해 3개월 동안 괄목할 만한 단합을 이뤘던 우크라이나와 미국, 유럽 국가들이 전쟁의 끝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갈라졌다고 전했다.

◆미국: 러시아 ‘전략적 패배’ 목표

미국이 러시아를 세계 경제와 단절해야 할 버림받은 국가로 지칭하는 가운데 주로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푸틴 대통령을 고립시키고 모욕하는 데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주장은 러시아가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지 못하고 실수를 거듭하자마자 전개됐다. NYT는 이에 대해 “미국의 야망이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미 행정부는 이제 전쟁을 러시아의 침략을 응징하고 푸틴 대통령을 약화시키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대서양 횡단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에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침략이 영토적 이득으로 보상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모든 영토를 되찾는다는 입장으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헨리 키신저(99) 미 전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내려면 러시아에 영토를 일부 넘겨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전쟁 목표에 대한 차이가 표면화됐다. 키신저 전 장관은 “앞으로 두 달 내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며 “(영토 상황을) 전쟁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게 이상적이며 그 이상을 추구할 경우 러시아와 새로운 전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에 대해 즉시 반박하면서 영토를 모두 되찾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제 미국 정부는 워싱턴이 러시아의 퇴각 이상의 것을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지난 4월 25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군대가 영구적으로 손상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주 바르샤바에서 나토 주재 미국 대사인 줄리안 스미스도 “우리는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에서 나토 동맹국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알렉산드르 드 크루 벨기에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은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 두 지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속히 끝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협상과 휴전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에서 나토 동맹국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알렉산드르 드 크루 벨기에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은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 두 지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속히 끝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협상과 휴전을 주장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유럽: 단합이 깨지기 시작하다

유럽에서 서방 동맹의 단합은 압박을 받고 있다. 먼저는 무기 공급에서다.

독일 공영 dpa 통신은 나토 소식통을 인용해 나토 회원국들이 전쟁이 확대될 위험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특정 무기를 공급하지 않기로 비공식적으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독일의 스파이크 대전차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을 허용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미국 소식통의 보도도 있었다. 스파이크 미사일은 독일에서 이스라엘의 허가 하에 이스라엘 기술로 생산된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침공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거부했다.

앞서 5차례 걸친 제재 조치를 지지해온 헝가리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금수조치에 주저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현재로선 러시아산 가스의 수입을 줄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쟁 목표에서도 분열은 드러났다.

소련의 오랜 지배 경험을 가진 중유럽과 동유럽의 지도자들은 러시아를 격퇴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심지어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영국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나라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은 장기간 또는 교착상태로 결말이 나는 전쟁에 대해 불안해하며 자국 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러시아를 영원히 고립시킬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이웃으로 생각한다. 28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역시 앞서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빠른 휴전’을 촉구했다. 또 유엔에 4단계 평화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도 문제이지만 끝난 후도 논쟁의 연속이다. 한 서방 관리는 가디언에 “전쟁이 끝나면 푸틴 대통령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로 나뉘고 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가 다연장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민병대가 다연장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 또는 장기 전쟁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정권의 더 큰 패배로 목표를 확장하지 않도록 주의해 왔다. 그는 러시아군이 대규모 침공이 시작되기 전인 2월 23일의 상황으로 후퇴하기를 원한다고 거듭 말했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휴전과 합의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유럽 관리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이런 목표들도 굉장히 야심찬 것으로 간주한다. 2월 23일 상황으로 가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헤르손과 마리우폴을 되찾아야 하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란 설명이다.

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첫 단계에서 눈에 띄게 잘했지만, 현재 전투의 중심지인 동부 돈바스는 매우 다르다. 공세에 나서려면 무기를 제외하고도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우크라이나는 인력이 적다. 반면 러시아군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더라도 느리지만 점차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택은 젤렌스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서방이 제공하는 것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도 하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진단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센터의 도브 자크하임 선임 고문은 최근 인터뷰에서 “푸틴은 우리가 좋든 싫든 간에 베이컨을 집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고 마리우폴은 작은 조각이더라도 한 조각이다”라며 “우크라이나의 생명과 물질에 대한 비용을 계속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어려운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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