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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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기자회견을 해 본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건 집시법 위반”이라며 경고하는 경찰의 모습을 종종 봤을 것이다. 나도 많이 들어봤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한 홍대 교수가 권력형 성폭력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게 문제가 돼 큰 물의가 빚어졌다. 마포구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연대해서 대응했다. 지난해 9월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마포경찰서는 누군가가 고발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김민석 사무국장을 출석요구해 조사했다. 기자회견 때 구호를 외쳤다는 게 조사 이유다.

김 사무국장은 블로그에서 기자회견을 고발한 것은 “카메라 앞에 섬으로써 우리 사회에 불편한 이야기를 건넬 수밖에 없는 시민들의 권리를 빼앗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필자와 통화에서 “기자회견은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 택하는 수단인데 경찰과 집행기관이 법 규정을 무기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민주주의가 이 나라 국민이 지향하는 제1의 가치이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집권자는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역사적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사상·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다. 그럼에도 경찰은 기자회견하면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처벌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처벌받은 사람이 많다. 어떤 때는 처벌하지 않고 어떤 때는 처벌한다. 무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무줄 잣대다.

검찰과 경찰이 간혹 처벌할지라도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검열 체계가 작동하게 된다. 누구나 자유를 외치고 모든 사람이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소리 높이 외쳐지는 나라에서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구호조차 외치지 못하게 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일까?

헌법 21조 1, 2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집회 허가제는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48시간 전에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집시법은 헌법의 하위 법률이다. 집회 신고제 운영으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다. 현행 집시법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이다.

경찰은 기자회견할 때 구호 외치는 것은 물론 피켓을 드는 것도 문제 삼는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고 억누르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 집회의 자유는 신고 과정 없이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자유와 인권이 실현이 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의석 180석을 몰아줬다. 민주주의 적폐, 인권적폐를 청산하라고 쥐여준 권력이다. 민주당은 집시법부터 바로 잡아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의사를 표현하고 의지를 드러내는 데 제한을 가하는 인권독소 조항을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경찰과 검찰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질서유지’를 내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는다면 폭력조직에 다름 아니고 세금 먹는 하마로 인식될 뿐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민주적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절에 국가 권력기관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자신의 위상을 설정하지 않고 국민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겼다. 지금도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권자의 뜻을 배반하면 대통령도 쫓아내는 국민이 이 나라 국민이다. 국민을 아래로 내려다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잘 모셔야 하는 주권자로 보는 가치관이 확고히 자리잡아야 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을 제일의 사명으로 여기는 국가기관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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