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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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서울CC에서 열린 GS칼텍스 매경오픈을 직접 관전했다. 오랜만에 많은 관중과 함께했다. 2년전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렀던 남자골프대회는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관중 입장을 허용하면서 수많은 갤러리가 모여들었던 것이다. 관중들의 관심은 챔피언조에 경기를 했던 김비오(32)에게 쏠렸다. 그가 3년여전 이른바 ‘손가락 욕’ 파문 이후 처음으로 수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1번홀 티그라운 주위에는 많은 갤러리가 그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김비오 선수입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그가 캐디와 함께 티 박스에 섰다. 캐디가 “플레이하겠습니다. 핸드폰을 내려주세요”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평소 중요 대회에서 캐디들이 잘 쓰는 말이지만, 결코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불편했던 그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이 말과 함께 수백여명의 갤러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내 김비오가 힘차게 휘두른 드라이버샷은 페어웨이 정 중앙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김비오는 2019년 DGB금융그룹 볼빅 대구경북오픈 최종 라운드 도중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난 갤러리를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우승하고도 웃지 못했던 그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로부터 3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1년으로 경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필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많이 달라졌다. 회한과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비우고 프로선수에 걸맞게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재기를 기대하며 한층 더 성숙해졌다. 봉사활동과 기부도 틈틈이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무관중 속에 치러졌던 지난해 시즌 최종전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그는 “앞으로는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아시안투어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회에 출전했다. 출전한 5차례 대회 중 3차례 톱10에 들었다. 이번 매경오픈에서 그는 많은 갤러리 앞에서 인사에 신경을 쓰며 조심했고 모범적인 행동을 하기까지 했다. 3라운드에서 경기 도중 운영 요원이 갑자기 쓰러진 상황을 가장 먼저 목격하고 신속하게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3년 만에 다시 만난 갤러리들 앞에서 10년 전의 매경오픈 우승을 재현하며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우승의 영광을 안기까지는 남모를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에 더욱 각별해 보였다.

골프는 매너의 경기다. 자기의 스코어를 직접 적고 관리하며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경기 관전 예의를 갖춰야 한다. 골프에서 관중을 영어로 미술관을 뜻하는 ‘갤러리’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듯 정숙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갤러리들은 한 장소에 설치된 스탠드에서 보기도 하지만, 실제 선수들이 하는 코스를 따라다니며 경기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대회 주최 측은 보통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중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코스를 따라 로프를 설치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로프 안으로 갤러리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제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에 손을 대지 않도록 로프를 쳐 놓고 찬찬히 그림을 보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대회에서 좋은 관전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선수나 갤러리 모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관중들의 행동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또 갤러리들은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려는 선수들의 입장을 배려해 샷을 할 때 핸드폰을 들이대 사진을 찍는 것은 삼가야 한다.

5월의 푸르고 드넓은 잔디 위에서 선수와 갤러리들이 서로 존중하며 편안한 관전 문화를 만드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한때 ‘밉상’을 받다가 10년 만에 매경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갤러리들의 사랑을 받는 김비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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