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3명 목숨 잃어…언론인·유족들, 안이한 당국 대응 성토

멕시코 멕시코시티 도심 독립기념탑 근처에 9일(현지시간) 오후 플래카드와 손팻말을 든 기자들이 모였다.

지난 5일 북부 시날로아주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인터넷 매체 기자 엔리케 라미레스를 추모하고, 잇단 언론인 피살에 대한 당국의 안이한 대응을 성토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자들이 집회 현장에서 하나둘 모일 때쯤 속보가 날아들었다.

동부 베라크루스주에서 기자 2명이 또 살해됐다는 뉴스였다.

시위를 준비하던 기자들은 속보가 날아든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도 안 돼"라고 탄식했고, 주최 측은 인근 인쇄소로 달려가 두 동료 기자의 추모 사진을 서둘러 인쇄했다고 멕시코 매체 아니말폴리티코가 10일 전했다.

인터넷 매체 엘바라스의 편집장 예세니아 모이네도(45)와 기자 세일라 가르시아(24)는 올해 들어 멕시코에서 피살된 10번째, 11번째 언론인이었다.

전날 오후 두 여성 기자들이 편의점에서 나와 차에 타려던 순간 괴한이 다가와 총을 쏜 후 달아났다.

모이네도의 유족은 그가 이미 보름 전에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았다며, 당시 협박범이 시청 비리와 관련된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언론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로 불린다.

마약 카르텔 등의 범죄 활동이나 당국과 정치권의 비리 등을 파헤치던 기자들이 입막음을 위해, 혹은 원한을 사서 살해되는 경우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역 소규모 매체 기자들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진실을 알리려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시민단체 '아티클19'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업무와 관련돼 살해된 언론인들은 153명에 달한다. 지난 5일 사이 살해된 3명의 기자는 아직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올해는 아직 5월인데 벌써 11명의 언론인이 목숨을 잃었으니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언론인 피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불처벌'은 없을 것이라며 엄정한 수사를 약속하지만 실제로 범인이 붙잡혀 유죄 판결까지 받는 비율은 극히 낮다.

협박에 시달리는 기자들이 두려움을 호소해도 실효성 있는 보호장치도 미흡하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언론인 비판 발언을 자주 해서 오히려 언론인들에 대한 공격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2017년 살해된 하비에르 발데스 기자의 부인 그리셀다 트리아나는 전날 시위에 나와 "멕시코에서 기자를 죽이는 일이 매우 쉽다"며 기자들의 잇단 죽음에 손놓고 있는 정부를 성토했다.

언론인 로돌포 몬테스는 당국과 여러 차례 대화를 한 끝에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며, 동료 기자들을 향해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할 테니 우리가 스스로 지키자"고 말했다고 아니말폴리티코는 전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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