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며칠 전 청담동 갤러리 밀집지역에서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야간파티가 열렸다. KIAF 개막 전날에 프리뷰를 마친 고객 및 미술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미술을 얘기하고 교류하는 자리다. 외국 갤러리 인사들도 많이 모였다. 현재 미술 시장은 우리나라 경제사정에 발맞추어 크게 위축된 상태다. 필자가 주로 머무는 청담동만 해도 수년째 갤러리들이 망해서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신생 갤러리들이 자리를 메우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를 보면 분명 세상은 녹록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나 갤러리들은 열심히 활동한다. 성실함을 무기로 말이다. 미술의 성수기인 가을을 맞아서 작가의 바람직한 방향을 정리하면 첫째 융복합, 둘째 작가만의 정체성(identity), 셋째 속도, 넷째 도덕성이다. 최근에는 융복합적인 작품이 많이 보인다. 사진, 판화, 회화가 합해지고 산업에서 쓰이는 제작 방법이 그대로 미술에 옮겨왔다. 장르를 가르고 전공을 따지는 시대는 사라진,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시대다.

“문명을 제1, 2, 3의 물결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앨빈 토플러의 문명론은 사실 대수로울 게 없어요. 문명은 숫자의 업그레이드로 오는 게 아닙니다. 일직선상에서 발전해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곧 제1의 물결이나 제3의 물결이 다를 게 없다는 걸 말하는 거죠. 물결은 한꺼번에 옵니다. 디지털 시대라고 아날로그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필요하죠. 그게 ‘디지로그’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게 문명을 읽는 지혜입니다”라고 이어령 교수가 주장한 것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누구나 다른 작가 이상의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싸이 톰블리(1928~2011)가 “만약 전생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푸생(1594~1665)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작품 스타일에서는 완전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시대를 뛰어넘는 교감이 두 사람을 한데 묶은 것이다. 그 둘은 고대 역사, 고전 신화, 르네상스 회화에 관심이 많았다. 미술에서의 융복합은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행위임을 톰블리는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융복합을 시도하는 가운데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꾸는 것은 작가나 경영자나 기술자, 과학자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김난도 교수는 “무엇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대다수 사람이 오리가 되려고 합니다. 헤엄칠 줄 알고, 걸을 줄도 아는 오리 말입니다. 여러 가지를 한다는 것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새끼 독수리가 자꾸 오리가 되는 연습을 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오리만 찾습니다. 독수리는 날고, 말은 달리는 데 전념할 수 있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강조한다.

흔히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하지만 속도도 매우 중요하다. 미술시장에서는 남보다 느리면 인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에 베이징 주거(九歌)경매유한공사의 경매에서 7280만 위안(126억 원)에 팔린 쉬베이훙(徐悲鴻, 서비홍, 1895∼1953)의 유화작품의 하나인 ‘인체 여자 장비웨이(人體蔣碧微女士)’가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1980년대 중국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그린 누드화 습작들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당시 경매 업체는 쉬베이훙의 장남 쉬보양(徐伯陽, 서백양)이 문제의 작품을 들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였고 쉬보양은 “이 유화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남긴 유작이다”라고 쓴 2007년 9월의 배서도 함께 공개하며 진품임을 강조하려고 했다. 위작으로 인하여 중국 미술시장의 신뢰도는 엉망이 될 것이다. 세계적 짝퉁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저질문화가 예술계에도 그대로 복사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1세대 현대미술 작가들을 둘러싼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창작이나 유통은 지탄을 받으며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착한 경쟁이 요구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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