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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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어느 마을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이가 오백살 넘게 먹은 이 나무는 한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그 자리 묵묵히 뿌리를 박고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버팀목으로, 푸른 잎과 신선한 공기로 그늘을 내어주는 휴식과 안식의 쉼터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런데 이 회화나무에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재개발사업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갔던 이 나무를 다시 찾아와 심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 나무를 홀랑 태워버린 것이다. 다행히 목숨은 겨우 부지했지만 다시 소생할지는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오래토록 긴 세월 한 자리만 지켜오던 이 회화나무가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이기심, 나무가 살던 동네의 재개발정비사업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나무는 이미 거기서 운명이 다한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설계변경을 통해서라도 나무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장구한 세월의 회화나무에 대한 어떤 법적 보호도 없는 상태여서 노거수는 그 자리에서 베어질 처지에 놓였었다. 나무를 관리 보호해야 할 관도 정치권도 나 몰라라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무에는 표가 없지만 재개발사업에는 많은 이권과 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회화나무와 함께했던 원주민들의 저항과 요청에 의해 겨우 목숨만은 부지한 나무는 이식과정에서 팔다리를 비롯해 심지어 뿌리조차 잘린 채 500년 동안 뿌리박고 살던 땅을 떠나 진주라는 낯선 땅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그리곤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3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노거수는 낯선 토양에서도 스스로 생육환경을 개선하며 몇 가닥 가느다란 줄기와 잎을 틔우며 강인한 삶을 이어 나갔다. 비극은 여기까지였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낯선 땅에 적응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코자 했던 이 오래된 회화나무를 사람들은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제는 필요없다고 베어버리고 그걸 또 그대로 나 몰라라 방치했던 지방정부와 의회는 노거수의 가치를 뒤늦게 알고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관리소유권을 받고 회화나무를 인근 근린공원으로 모셔오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부산시가 재정적 지원까지 했다. 재이식은 노거수를 욕되게 하고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우려를 제기했던 환경단체의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회화나무는 '귀향' 이라는 떠들썩한 관의 홍보 속에서 다시금 극도의 스트레스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돌아 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재이식 과정에서 뿌리 보호용 철재박스를 해체하는 용접봉의 불똥이 튀어 치유하기 어려운 화상을 입고 만 것이다.

회화나무는 흔히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이 나무의 기상이 학자의 기상처럼 자유롭게 뻗었을 뿐 아니라 주나라 사(士)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한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무성한 나무가 바로 회화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수백 년에서 천 년을 넘겨 살 수 있고, 다 자라면 두세 아름에 이르기도 한다. 키만 껑충한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고루고루 뻗어 모양이 단아하고 정제돼 있다. 그래서 궁궐이나 서원, 문묘, 양반 집 앞에 흔히 심는다. 잡귀가 붙지 않는 나무라고 믿어 회화나무 세 그루를 집 안에 심어두면 그 집에 복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번에 불에 탄 회화나무 역시 높이 12m의 대형 노거수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에 속한다. 마을의 당산목으로 오랫동안 터줏대감으로서 마을을 지켜왔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으로 온갖 풍상 끝에 화마까지 입고 만 것이다.

부산 사상구 회화나무의 비극은 실로 많은 물음을 제기한다.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끝간데 없는 인간 이기심의 축소판이자 결정판이다. 사지가 절단된 채 불에 타버린 고목의 처참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다. 여기엔 극단의 탐욕과 생명경시 풍조가 여과없이 투영돼 있다. 멈출 줄 모르는 개발이익의 추구와 성과주의에 매몰된 구태의연한 전시행정이 빚어낸 참사였다.

다시말해 사상 회화나무의 비극은 철저히 인간의 이익에 따라 나무의 삶을 유린한 예상된 비극이자 의도된 살해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는 뭇 생명이 더불어 함께 공존한다는 기본적인 생명사상마저도 망각하고 ‘그깟 오래된 나무 하나 정도’로 여기는 천박한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런데 이 황폐하고도 오만한 인간정신의 폐해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고 미래세대가 겪게 될 기후재앙 아니던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 비극을 되풀이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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