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뉴시스)

‘군사활동 축소’ 러 주장 의심

러, 낙관론 일축 “진전 없었다”

젤렌스키 “아무말도 안 믿어”

전쟁 장기화에 푸틴 정권 타격

“러 전쟁비용 하루 30조원”

英·美 “푸틴 전쟁 현실 몰라”

[천지일보=이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를 상대로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왔다. 가장 최근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의 침공 전까지 그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 10만명을 집결시켜놓고 “침공 계획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러시아 정부가 지난 29일 제5차 평화회담에서 발표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 활동 대폭 축소에 대해 깊은 회의론이 부상하는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실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이번 평화협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관측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군사작전을 제한하겠다는 러시아군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수도 키이우 등에 공격을 계속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어떤 문구도 믿지 않는다”고 낙관 전망을 일축했다.

5주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주민 4분의 1이 집을 떠났고 러시아와 서방 간의 긴장은 냉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러시아는 키이우를 포함한 주요 도시를 점령하지 못했다. 이번 평화회담에서 러시아 정부는 키이우와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 인근에서의 작전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포함한 서방 동맹국들은 이를 두고 러시아가 자국의 손실을 막고 다른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비관했다.

◆낙관론에 선 긋는 우크라·러

러시아군은 평화회담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제안을 일축했다. 러시아 협상단을 이끄는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이날 협상 직후 이스탄불 협상을 끝마친 후 기자들에게 건설적 협상을 했다며 양국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러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다음날 그의 발언을 철회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번 회담이 전환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양측이 진전을 이뤘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도 “우리는 어떤 종류의 후퇴도 하지 않고 있다”며 “메딘스키 보좌관이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등에 대한 공습을 축소하고 동부 지역 점령에 집중하겠다는 러시아군의 약속에도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서방 관리들은 러시아 정부의 이 같은 군사 전략 전환은 우크라이나 내 거점 중 하나를 확보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큰 손실을 입은 후 벨라루스와 러시아에 복귀해 재집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 국방부의 평가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군의 공격은 수도에서 떨어진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보이나 키이우 주변 러시아군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되지 않았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군의) 공격이 멈추지 않았다”며 “키이우는 매우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체르니히우 주지사 역시 공습경보가 멈추지 않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우크라이나군도 러시아군이 동부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집결하고 있는 징후를 봤다면서도 키이우 점령을 포기했다는 데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우크라이나군은 수도 주변에서의 (러시아군) 병력 이동 또한 부대 순환에 불과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마리우폴=AP/뉴시스] 29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관할 구역인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 거리에 교전 중 숨진 사람의 시신이 담요에 덮여 있다.
[마리우폴=AP/뉴시스] 29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관할 구역인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외곽 거리에 교전 중 숨진 사람의 시신이 담요에 덮여 있다.

◆“푸틴은 군사반란 직면했다”

러시아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상 전쟁의 장기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러시아군과 정부, 국민의 타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달 초 영국 경제회복센터와 전략컨설팅업체들은 “개전 첫 나흘 간 러시아 전비(戰費)는 70억 달러(약 8조 5841억원) 정도에 그쳤으나, 이후 탄약∙보급품 확대와 전사자 속출, 로켓(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하루에 200억~250억 달러(약 24조 5260억~30조 6575억원)로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추산을 적용할 경우 지난 2월 24일 전쟁 발발 이후 3월 30일까지 러시아가 쏟아 부은 전비는 6480억∼8030억 달러(약 777조 6000억∼963조 6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 정부의 연간 세입이 약 342조 5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군인들의 사기 역시 날로 떨어진다는 현지 소식도 계속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제레미 플레밍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 첩보국장은 30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반란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호주국립대에서 연설 도중 “우리는 무기와 사기가 부족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장비를 파괴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항공기를 실수로 격추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플레밍 국장은 “푸틴은 상황을 크게 잘못 판단하고 있다”며 “우리는 푸틴의 고문들이 그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주장은 같은 날 미국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백악관은 이날 최근 기밀해제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 참모들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당국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정예군이 아닌) 징집병을 보내 희생시키는 것조차 몰랐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미국과 동맹국들에 의해 부과된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지 완전히 알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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